에게

이별의 그늘(윤상)

노래2019. 2. 18. 13:32

 

 

문득 돌아보면,

 돌아보면 있다.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내가 있다. 다시는 임용고시 따위는 보지 않을 거라고 누간가의 어깨를 붙잡고 울던 내가 있다. 그 때 그는 내게 그랬다. 이렇게 울 거면 다시 해. 그러나 나는 그 뒤로 임용고시를 치르지 않았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돌아보면 아직도 나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있다. 몇 번이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스스로 허무는 나를 돌아보는 내가 있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럴 거면 다시 써. 그러나 나는 어떤 시도 쉽게 완성하지 못했다. 

 몇 년 전 어렵게 시를 완성해온 한 아이에게 이렇게 쓸 거면 쓰지 마,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주아주 나중에 그 아이가 한 시간 가까이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늦게서야 돌아보니 아직도 울고 있는 그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 다가와 왜 아직 울고 있는 거냐고 되묻는다. 아, 울고 있는 건 나였구나.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번지다 만 그늘처럼. 그 그늘에서 시간은 고이고 늘 같은 자리에 서있으면서 난 아주 먼 길을 떠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으며 또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서 있다. 아버지는 돌아보는 일에도 서툴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찌른 채지만 나머지 한 손은 만질 것도, 따로 둘 데도 없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는 주로 마당가에 서 있다. 아버지는 내가 오는 기척을 느끼지만 바로 돌아보지는 않는다. 마치 다른 중요한 볼 일이 있는 것처럼, 마침 삭정이처럼 비어져 나온 손으로 허방을 더듬는다. 아주 먼 길을 떠나온 사람처럼,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만날 수 없었지, 한번 어긋난 후,

 

 어떤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만나게 해드릴게요. 한번쯤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아이들은 여럿 있었지만, 나만의 의지만으로, 나 혼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움직여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만날 필요가 있을까. 물론 그 아이는 내게 선의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 아이가 나와 만나게 해줄 수 있는 또다른 무리들은 나와 무척 다정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나, 마치 이미 어긋나버린 사이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다시 만나기 위해선 누군가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만 시간이 흐른 것뿐인데도 말이다.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는 먼 그대,

 

 뇌에는 감정과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뇌가 각각 따로 있다고 한다. 전자의 주체는 해마와 편도체이고 후자의 주체는 전두전야이다. 이 두 개의 뇌는 상황에 따라서 주종관계가 뒤바뀌는데, 해마와 편도체의 작용이 활발해지면 사람은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 채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전두전야의 작용이 활발해지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이성적 평가를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는 먼 그대’가 있다고 하자. ‘나’는 얼핏 해마와 편도체의 작용에 압도당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별이 슬프고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사실 전두전야가 주도적으로 작동하여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객관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사실을 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슬픔이나 안타까움의 정서가 깔려 있지만, ‘나’는 그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되도록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더 객관적으로 위치시켜 ‘먼 그대’라고 인식하고 있다. 


 더 오래 살아 있길 바란다. 더 멀리 떨어진 채로. 영영 객관적인 기억 속에서.   

 

 난 끝내 익숙해지겠지, 그저 쉽게 잊고 사는걸

 

 그러나 끝내는 익숙해진다. 먼 산까지 아지랑이 기어오르는 봄날부터, 눈의 결정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는 겨울날까지, 시간이 시간을 부르고, 시간이 시간을 잊고, 다시 시간이 시간으로 되살아나는 동안, 나도 서성거리다가 떠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잊고, 몰래 울고 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시를 잊고,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던 사람을 잊는다. 아버지를 잊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까지 잊는다. 내가 아주 오래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듯이, 우왕좌왕, 허둥지둥, 아등바등했던 모든 몸짓을 잊는다.  
  


  또 함께 나눈 모든 것도 그만큼의 허전함일 뿐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만남을 준비할까

 하지만 기억해줘,

 지난 얘기와 이별 후에 비로소 눈뜬 나의 사랑을

 
 

 나는 안개를 이해하지 못했다, 라고 시작하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시골마을에는 아침안개가 늘 자욱했다. 안개 속을 눈이 먼 것처럼 더듬더듬 걸어가곤 했다. 느릿느릿. ‘더듬더듬’과 ‘느릿느릿’은 그 때의 내 속도였다. 짙은 안개가 걷히고 나는 눈을 떴다. 안개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을 안개를 이해한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허둥지둥했다. 아등바등 사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안개는 아직도 등 뒤에서 일렁였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돌아보면, 내가 아직 같은 자리에 있을까봐 두려웠다. 그 아이가 울고 있고, 아버지가 아직 서성거리고 있고, 아무도 용서하지 못한 채로,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한 채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일까봐 돌아볼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었고, 눈앞에 분명 누군가 있었는데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가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얼굴을 만지며 이렇게 말한다.

 

 왜 아직도 울고 있느냐고.

 

 나는 아무하고도 헤어지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8월 마지막 경기에서 롯데자이언츠에 8:6으로 졌습니다. 스코어상으로는 나쁘지 않은 패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경기 운용을 들여다보면 암울합니다.

 

  양현종 선수가 1회 5실점을 했지만 2회부터는 안정을 찾아 에이스다운 투구 내용을 보여줍니다. 타석의 선수들도 꾸준히 점수를 보태 4회, 5:4를 만듭니다. 롯데자이언츠도 쉽게 물러날 경기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5이닝이나 남은 상황에서 1점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7회였습니다. 7회말, 김동한을 대신해 타석에 들어선 채태인 선수가 안타를 치고 나갑니다. 이미 1이닝을 던진 김윤동이었지만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지켜볼 만했습니다. 채태인은 대주자 나경민으로 교체되고 타석에 선 안중열에게 보내기 번트 사인이 떨어집니다. 1사 2루. 그 다음 타석에는 전준우 선수. 볼이 연달아 들어갑니다. 3구째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었지만 김윤동 선수의 구위는 눈에 띄게 저하돼 있었습니다. 전주우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하여 1사 1, 2루가 됩니다.

 

 ㉠이대진 코치가 투수 교체를 해야 되겠다고 김기태 감독에게 의견을 제시하지만 김기태 감독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힙니다.

 

 ㉡이대진 코치가 투수 교체를 하기 위해 마운드에 나가려는 순간 김기태 감독이 그를 붙잡습니다. 설명은 없습니다. 그 모습도 중계회면에 잡힙니다.

 

  투수교체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손아섭은 김윤동의 초구를 통타해 우측담장을 넘겨버립니다. 쓰리런홈런. 스코어는 8:4.

 

  ㉠과 ㉡의 선후관계가 실제로 어떠했는지 중계방송을 복기해보지 않아 자신은 없습니다만 아마도, 전준우 타석 전에 ㉠이 이뤄졌고 손아섭 타석 전에 ㉡이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사건의 선후관계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김기태 감독이 이대진 투수코치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것입니다. 투수 교체 타이밍을 머리를 맞대고 논하다가 투수 교체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김기태 감독이 독단적으로 투수 교체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후 롯데자이언츠는 단 한 점도 추가하지 못했고, 기아타이거즈는 최형우와 나지완 선수가 홈런을 터트려 8:6까지 따라갔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졌지만 잘 싸운 경기’도 아니었습니다. ‘잘못 싸워서 진’ 그런 경기였습니다.

 

  결과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대진 코치는 분명 투수를 바꾸려고 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이순철 해설위원도 손아섭 타석에서 투수를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커뮤니티에서도 투수를 바꾸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경기의 패배를 확정지었죠. 이 경기로 기아타이거즈는 8위가 되고 롯데자이언츠는 7위로 올라섰습니다.

 

  김기태 감독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있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선수들, 코칭스태프와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김기태 감독은 선수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헤아려준다. 특히 베테랑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 소통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소통을 잘하는 감독이라면 임창용 선수와 정성훈 선수를 그 때 2군에 내려보내지 않았겠죠. 기아타이거즈에 뼈를 묻겠다며 돌아온 임창용 선수를 선발로 마운드 위에 세워 무력하고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았겠죠. 당장 어제 경기에서도 이대진 코치가 제시하는 의견을 받아들였겠죠.

  선수들의 입장과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임창용 선수가 선발로 나서겠다고 한 건 정말 자신이 선발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는데, 김기태 감독은 ‘임창용 선수가 하고 싶다고 해서’ 선발로 돌렸다고 했죠.

 

  기사 : 김기태 감독의 ‘임창용 선발 전환 이유’ “본인이 원해서”

  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1807/sp2018071916185757360.htm

 

  선수가 하고 싶다고 하면 다 시켜주는 게 감독입니까? 비겁합니다. 당신은 진짜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책임진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겁니까? 당신이 감독직에서 물러나면 어제 경기의 상실감이 회복될 거라 믿습니까? 8위로 곤두박질친 팀의 순위가 이해되리라고 믿는 겁니까? 당신의 사퇴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합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도피의 수단이 되겠지요.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말처럼 가장 무책임한 말도 없다고. 감독으로서 책임을 진다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제의 경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다시 7회말로 가봅시다. 7회말 1사 1, 2루입니다. 타석에는 롯데자이언츠의 강타자 손아섭 선수입니다. 이때 이대진 코치가 당신에게 뭔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감독으로서 경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들에 충실히 복무하는 것입니다. 코칭스태프는 당신의 1인 동아리가 아닙니다. 수석코치가 있고 투수코치가 있습니다. 배터리코치도 있고요. 타격코치도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경기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지 의견을 모으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팀이 패배하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경기 결과를 수용하고 자신의 과오가 있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말끝마다 감독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하는 게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태도로는 당신은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져야 할 책임의 일부를 지금 임창용 선수가 지고 있는 것입니다. 임창용 선수는 투수조 운용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소통을 중시하는 감독이라면 투수조 최고참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겠죠. 그런데 당신은 이를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임창용에게 2군행을 통보했습니다. 웨이버공시까지 시키려고 했죠.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임창용 선수는 1군에 다시 올라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게 됩니다. 마땅한 선발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임창용 선수가 자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선발투수를 하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임창용 선수는 책임을 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자신이 2군에 가 있는 동안 투수진은 더 사정이 안 좋아졌으니까요. 후배들에게 지워질 부담을 자신이 지기로 한 것이지요. 김기태 감독은 임창용 선수에게 다른 의미의 벌투를 내린 것이고, 임창용 선수는 감독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임창용 선수가 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책임을 지고 있는 중입니다.

 

 

 

[변산]은 문학적이다. 초창기의 영화가 문학작품에 그 서사를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많은 문학작품이 영화화되었다. 그 중 이범선의 <오발탄>을 원작으로 한 [오발탄](유현목, 1961)은 아직까지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문학적인 영화에 대한 인상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문학적인 영화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문학적인 영화라면 뭔가 지루하고 정적이며 교시적일 거라는 게 일반 대중들의 생각이다.

 

 이창동 감독의 [시](2010)에서 한 소녀의 죽음으로부터 발생된 자신의 죄악을 온몸을 내던져 씻어내고자 했던 ‘미자’의 사투는 역동적이지 않다. 움직임은 느슨하고 동선 역시 제한적이다. 그러나 손자가 성폭행사건에 가담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가 보아온 시의 풍경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동일한 템포로 서사는 흘러가지만 ‘미자’의 내면은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그런 ‘미자’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 [시]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바, 그에 맞는 속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자’가 보아온 자연 그대로의 풍광들이 카메라에 담길 때 속도는 왜곡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자’가 ‘희진’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속도는 생사를 앞질러갈 만한 속도이다. 문학적인 영화 [시]는 그래서 결코 지루하거나 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위태로운 인물의 내면을 아슬하게 비춰주면서 특유의 긴장감을 유발하고, 물리적인 속도를 뛰어넘는 역동성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변산]은 문학적인 영화다. 아름다운 서정이 있고 정제된 의미가 있다. 미장센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학수’가 귀향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변산]의 서사는 ‘학수’의 탈향에 대한 욕망으로 추동된다.

 

 ‘학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랩을 할 때 사투리를 쓴다는 지적에 자신의 고향은 서울이라면서 변산을 부정한다. 에드워드 렐프에 의하면 ‘장소’는 인간에게 공동체적 공간을 부여하고 세계와의 관계 결속을 통해 그 실존의 근원을 깨닫게 한다. 특히 렐프에게 ‘집’과 ‘고향’은 인간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은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대와 내밀한 관계성을 갖게 되는 보편적 장소이다. 학수가 고향 변산의 장소성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근원지에 대한 부정이고 이는 곧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자기부정은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린다. ‘학수’는 여섯 번째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한 미션을 뛰어넘지 못한다.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고향 변산을 떠올리게 하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까지 소환시키기 때문이다. ‘학수’의 아버지는 바로 아내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학수’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긴 인물이다.

 

 ‘학수’는 동창 ‘선미’의 계략(?)으로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오게 된다. 고향에 내려오긴 했지만 아버지에겐 냉담하고 포악하기까지 하다. ‘학수’라는 인물이 눈에 띄게 유아적 성향인 건 아쉬운 대목이다. 이준익 감독은 작심하고 ‘학수’를 찌질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좋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 ‘학수’는 보이스피싱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고, 자신의 시를 훔쳐 신춘문예에 당선된 선배를 만나기도 한다. 어렸을 때 ‘꼬붕’이었던 동창생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학수’를 옥죄어 오고, 실패한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만 ‘용대’에 의해 여의치 않게 된다.

 

 ‘학수’의 기억에 의존한 플래시백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학수’가 아버지와 화해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산]이 의미가 있는 것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충분히 살린 음악영화이고, 그 노랫말이 서사의 결을 성실히 따라가고 있다는 데 있다. ‘학수’가 직접 짓고 부르는 노랫말은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이다. ‘용대’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사실 ‘학수’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관객을 설득시키지는 못한다. 흘러나오는 학수의 랩은, ‘자신의 상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선미의 대사)’ 학수 자신에 대한 질책이다. 성공하지 못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고, 애증의 아버지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고, 자신의 첫사랑은 자신의 ‘꼬붕’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동창 ‘용대’에게 빼앗겨버렸고,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 동창생 ‘선미’는 어느새 작가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학수’는 자신을, 자신의 상황을 더욱 부정하게 된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노을뿐이다.

 

  이 시는 ‘학수’가 고등학교 때 썼던 시의 도입부이다. ‘학수’는 잊고 있었지만 그 기억은 ‘선미’에 의해 온전히 복원된다. ‘선미’에게 ‘학수’는 단순한 첫사랑이 아니라, 시에 눈을 뜨게 해준 스승과도 같다. ‘학수’는 ‘선미’마저도 부정하기 급급하지만 ‘선미’가 보여주는 진심과 시에 대한 진지한 태도 덕분에 조금씩 ‘앞’을 보게 된다.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던 ‘학수’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보게 되고, 벼르고 별렀던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아버지를 살해하는 영화도 있긴 하지만 장르의 특성상 학수가 아버지에게 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과한 듯하다. 아버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버지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학수’는 자신의 또다른 트라우마가 돼버린 ‘용대’에게 맞서기로 한다.

 

  ‘학수’와 ‘용대’가 갯벌에서 격투를 벌이는 동안 변산초등학교 동창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학수’와 ‘용대’의 일전은 시작부터 김이 빠진다. [영화는 영화다]의 엔딩씬을 비장하게 오마주한 시퀀스는 ‘선미’가 개입한 순간부터 코믹하거나 싱거운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

 

 ‘학수’는 ‘용대’와 일전을 치른 뒤 ‘용대’를 ‘파리○’이라고 비아냥거린다. ‘학수’는 어린 시절 ‘용대’를 그렇게 취급했었다. 동창생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복원한다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용대’가 등장하면서 촉발되었던 긴장감은 맥거핀으로 소모되지만, ‘용대’ 또한 [변산]에서 ‘학수’에게 큰 동기 부여를 하는 인물이다.

 

  ‘변산’은 낙후된 시골공간이다. 인물들의 사투리는 촌스럽고 의식도 그렇다. 적어도 ‘학수’에게는 그런 이미지이고 사실 객관적인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촌스러움, ‘학수’가 벗어던지고 싶은 누추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변산’이 촌에 위치해 있으니 그곳의 인물과 정서가 '시골스러울' 수밖에 없다. 촌스럽다는 말의 부정적인 의미를 걷어내면 정답고 따뜻한 것들이 있다. ‘선미’가 지켜온 노을이 그렇고 그 노을이 번지는 ‘폐항’이 그렇다. 친구들이 10년 동안 지켜왔던 학수 모의 산소가 그렇고 ‘선미’를 비롯한 많은 변산 사람들이 구사하는 사투리가 또 그렇다. 폐항의 노을은 아무리 누추를 걸치고 고향에 돌아온 이가 있어도 그 자에게 ‘금의’를 입혀준다. 그것을 ‘학수’에게 일깨워준 사람은 다름아닌 ‘선미’이다. ‘선미’는 문학상을 받은 기념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도 사투리 쓰기를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근원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근원지로부터 더 멀리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떠나는 행위는 ‘나’가 누구인지 명확한 인식 이후에 가능하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떠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지워진 것이다. '학수'가 무시해왔던 고향 친구들이 '변산'의 장소성과 저마다의 근원을 지켜온 덕분에 '학수'는 다시 이들과 -에드워드 렐프가 말한- 내밀한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동질성과 자기근원, 장소성을 갖게 된다. '학수'가 새로운 것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그러나 부정했던 것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변산]의 문학성을 말해야 한다. 변산은 바다와 뭍이 만나는 곳이다. 경계와 접점의 공간이다. 노을도 그렇지 않은가.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서 노을이 진다. ‘학수’가 변산에 내려온 이후 주로 있는 곳은 병원이다. 그 병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학수 부’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보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거류민처럼 떠도는 ‘학수’는 그렇게 경계를 떠돈다. 주변을 맴돌고 관계를 겉돈다. 경계에 서 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경계 안쪽으로 들어오거나 아예 경계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학수’의 경우 경계 안쪽으로 진입해 들어오는 것으로서 떠돎을 끝낸다. 그리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경계를 지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 사투리에 대한 경멸, 과거에 대한 부정, 경계가 지워짐으로 ‘학수’는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기억을 복원하게 된다. 그 기억은 엔딩씬에서 ‘학수’가 선보이는 랩에 축약돼 있다. [변산]의 힙합은 슬프다. ‘변산’과 같은 어정쩡한 공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같다. 하지만 포즈가 어설픈 것이다. 포즈가 어설프더라도 그들의 정서는 섬세하고 그들이 구사하는 사투리의 ‘딕션’은 더 분명하다.

  [그 날 바다](김지영, 2018)는 그 날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를 바라보는 최초의 시점을 두라에이스에 위치시킨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도 두라에이스는 그 날 선상에 있었지만 실제 위치는 달랐다. 두라에이스가 레이더망을 통해 좌현 쪽으로 급회전하는 세월호를 감지했던 그 위치, 정부가 발표한 위치와 실제로 두라에이스가 있던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세월호의 진실은 거기에 숨겨져 있었다.

 

 

(NA) 오전 6시 40분경, 두라에이스는 진도관제센터 관할 구역에 들어선다. 8시 10분에서 20분 사이 좌회전 코스인 맹골 수도 입구에 도착했다. 이때 한 선박이 오른쪽에서 추월해 갔다. 그것은 여객선이었다. 맹골 수도 내에 두 섬 사이를 빠져나왔을 때, 문선장(두라에이스 선장)은 특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오른쪽 전방, 한 선박이 섬에 바짝 붙어 급회전을 하고 있다. 그 선박이 두라에이스 쪽으로 달려올 수도 있었다. 선박과의 교신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해당 선박의 AIS는 꺼져 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선박을 (문선장은) 계속 주시했다.

 

  진도관제탑으로부터 세월호 침몰 소식과 함께 구조 요청이 전해진다. 그러나 관제탑이 보내온 좌표엔 세월호의 AIS가 잡히지 않았다.

 

  (NA) 문선장은 직관적으로 조금 전 급회전했던 선박 쪽으로 항로를 잡게 된다.

 

  문 선장은 진도관제탑과 교신하면서 배에 탄 승객들이 배에서 탈출을 해야 인명 구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세월호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

 

  문선장은 다급한 요청에도(라이프링이라도 사용해서 승객들을 얼른 배 밖으로 탈출을 시켜라,) 여객선 선원들은 해경들이 언제쯤 오느냐는 것만 확인할 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경이 왔지만 해경들은 조타실로 향했다. 선내에서는 여전히 탈출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다. 승객이 아닌, 선원들을 먼저 구했다. 그 사이에도 어린 학생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승객들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활동을 도우려는 민간선박들에게 관제센터는 엉뚱한 위치를 보내주었다. 이쯤 되면 이런 전제가 가능해진다.

 

  정부는 처음부터 구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뜯어보면 더 무서운 전제가 추론된다. 처음부터 구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구조를 해야 하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가능해진다. 구조를 해야 하는 어떤 상황.

 

  고의침몰이다.

 

 

  고의침몰은 세월호 침몰 이후 꾸준히 제기됐던 가설이다. 정황이 그랬고 유력한 심증들이 계속 불거져 나왔다. [그 날 바다]는 수백, 수천 번 복기되었던 세월호의 항로를, 정부 발표 자료, 생존자 증언, 선원들의 증언, 전문가(물리학자) 자문, 선내 적재된 차량 내의 블랙박스 등을 재검토하며 되짚어간다. 만약 두라에이스가 없었다면 세월호 진상 규명은 정말로 요원한 일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김지영 감독.

  김지영 감독은 세월호 침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고 밝힌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월호 항로 재구성에만 6개월을 매달리는 집념을 발휘한 끝에 세월호 침몰 4년 만에 [그 날 바다]를 세상에 공개했다. 세월호를 다룬 첫 번째 추적다큐였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홍보영상을 만들어달라는 유가족의 부탁이었다. 김지영 감독은 어린 유가족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지영 감독은 다큐팀과의 회의를 통해 정부가 발표한 자료부터 분석하기 시작한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는 허점이 많았다. 이상한 자료였다. 사고 당일 새벽까지 세월호의 항적 기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3시 40분경, 갑자기 대전의 데이터 저장이 중단되었다. 그런데 또 갑자기 다음날 8시 50분경의 세월호 항적기록이 발표된다. 목포관제센터에 저장된 것이라고 했다. 직진하던 세월호가 급격한 우회전으로 인해 좌초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우회전 구간 항적의 데이터는 또 없었다. 세월호의 AIS가 꺼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4월 21일, 세월호 AIS가 꺼져 있었던 그 구간의 항적기록이 다시 공개된다. 그것도 목포관제센터에 저장돼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거차도의 관제자료에 남아 있던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 기록은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해군 레이더 항적도가 공개된다. 이 항적도에 따르면 8시 30분경부터 세월호가 급격한 좌회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간 자료가 없는 데이터였다. 일부를 공개하고 일부를 감추었다. 단순사고라는 결론을 위해 데이터는 은폐되고 누락되었다.

 

  다큐팀의 추적은 한계상황에 부딪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지영 감독은 열악한 환경에서 왜 [그 날 바다]를 만들어야 했는가. 웬만한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김지영 감독은 [그 날 바다]를 통해 항간에 회자되는 음모론을 제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다큐라는 장르의 목적성은 어떤 사실의 기록을 통해 진실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날 바다]가 다루는 세월호 침몰은 사실의 기록 자체의 복원이 어려웠다. 사실 기록이 고의로 숨겨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배제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과 유가족들을 달래는 내용으로 다큐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지영 감독은 애초에 그런 다큐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의 진짜 진실을 밝히는 것이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김지영 감독의 신념이 [그 날 바다]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그 날 바다]는 마침내 어떤 한 가지 진실에 당도한다. 그 진실에 대한 언급은 그 영화를 보게 될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기로 한다.

 

  엔딩씬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쯤의 상황이다. 프레임 속의 아이들은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차례대로 패닝되면서 화면에 뜨는 이름 앞에 쓰인 ‘고(故)’라는 말이 낯설다.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속에는 그렇게 생생히 살아 있을 아이들,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몸이 자꾸 왼쪽으로 기울었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좌현으로 기울어진 채다. 그 기울기를 감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 날 바다]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3653

 

  김지영 감독이 세월호 다큐 내레이션 작업 의뢰를 했을 때 정우성 님은 고민도 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멋진 분이다. 두 사람 다.

 

 

 

  이대진 코치가 2군으로 간 지(2018년 6월 8일) 수 일이 흘렀습니다. 당시 디시인사이드기아타이거즈갤러리에서 흘러나온 정보에 의하면 임창용 선수와의 갈등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임창용 편에 서서 김기태 감독과 대립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한 기사를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로는 이대진 코치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김기태 감독이 이를 수용한 것이라고 합니다만, 뭔가 타이밍이 자연스럽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4연승을 달리고 있는 시점에, 팀에 꼭 필요한 마무리투수가 담 증상을 보였고, 거기에 팀에 꼭 필요한 대타자원에게 ‘불필요한’ 휴식을 주었고, 그리고 메인 투수코치마저 2군으로 내려보냈으니까요.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443448&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악재와 혼란 속에서 기아타이거즈는 롯데자이언츠와의 3연전을 맞이합니다. 첫 경기를 내준 기아타이거즈는 두 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첫 번째 경기는 선발이 윤석민 선수였고 그가 컨디션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라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6월 14일, 윤석민 선수가 세 번째 선발 등판을 하는데, 오늘마저도 선발투수로서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윤석민 선수를 아끼지만, 그에게만 1군 마운드에서 구위를 가다듬는 조정기를 부여하는 특혜를 줄 수는 없습니다. 프로에서 ‘당연한 패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롯데자이언츠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임창용 선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기아타이거즈는 9회 김윤동 선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3실점을 하게 됩니다. 만약 9회초에 3점을 내지 못했더라면 또 한번 보기 좋게 역전을 당했을 것입니다. 정말로 임창용 선수가 몸에 이상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앞서 언급했던 갈등 때문에 그를 2군으로 내려보낸 것이라면 김기태 감독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경기, 8회말 1사, 신본기 타석에 채태인 선수가 대타로 들어섭니다. 이때 김기태 감독은 자동고의사구 작전을 지시합니다. 1사, 누상의 주자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이었습니다. 채태인 선수가 훌륭한 타자이긴 합니다만, 그런 작전을 걸 만큼 막강한 타자는 아닙니다. 설령 타석에 선 타자가 채태인 선수가 아니라 이대호 선수라 해도 그런 작전이 나와선 안 됩니다.

 

  채태인 선수 다음 타석은 한동희 선수였습니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두 선수의 기대득점은 사실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상황을 가르는 변수가 있다면 홈런일 텐데, 임기영 선수가 홈런을 허용할 확률이 높은 선수는 채태인 선수 쪽입니다. 그런데 채태인 선수는 홈런타자가 아닙니다.(6월 13일 현재 6홈런) 홈런을 많이 치지 않는 유형의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그 타자를 일부러 1루로 내보냈습니다. 1사 상황에서 주자를 두게 된 것입니다. 한동희 선수는 기대득점이 채태인 선수에 못 미치는 타자입니다. 결과는 삼진아웃. 2사가 되었습니다. 딴은 채태인 선수를 내보내고 병살 작전을 펼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효용성이 떨어지는 작전입니다. 어떤 통계도 타석에 선 타자와 마운드에 선 투수와의 대결을 정확히 예측해낼 수 없습니다. 채태인 선수가 1루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선 한동희 선수가 홈런을 때려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2사 후, 임기영이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김윤동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나종덕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전준우 선수에게 볼넷을 내줘 2사 만루가 됩니다. 팬으로서 상당히 보기 괴로운 장면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훈 선수가 플라이아웃으로 물러났지만 8회말 수비가 끝났다고 해서 8회말 수비가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다음 날 인터뷰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 작전을 펼쳤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라는 코멘트를 덧붙입니다. 김기태 감독은 유독 책임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 감독입니다. 자신이 실제로 질 수 있는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비약하자면 거의 모든 상황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말이 가장 무책임한 말이 됩니다.

 

  루징이 확실시됐던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가 우천취소된 건 천운이었습니다. 그러나 운은 운일 뿐입니다. SK와이번스와의 첫 번째 경기, 장염 증세로 결장한 헥터를 대신하여 황인준 선수가 선발 등판했습니다. 그 뒤에 등판한 임기영 선수가 SK 타선을 잘 막았고, 특별한 위기는 없었습니다. 안치홍 선수의 존재감이 돋보인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임기영 선수가 최근에 너무 많은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임창용 선수의 부재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SK와의 두 번째 경기(20180613)에서는 정성훈 선수나 서동욱 선수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마땅한 대타요원이 없어서 제대로 기회를 살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서동욱 선수가 2군으로 내려간 지 한 달이 다 됐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다룰 예정입니다. 서동욱 선수가 부진해서 내려간 건 맞지만, 타자는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부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16, 2017 시즌, 그는 충분히 역할을 해주었고 올 시즌에도 제 역할을 해줄 선수입니다. 이명기 선수나 최정민 선수에게 2군 정비 시간을 주고, 서동욱 선수를 콜업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준태 선수도 외야 가용 자원이니 이명기 선수의 수비 역할은 다른 선수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명기 선수는 타석에서 큰 믿음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김기태 감독은 작년 이명기 선수의 잔상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기태 감독이 여전히 이명기 선수를 신뢰하고 있다면, 다른 선수에게도 그런 방식의 신뢰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똑같이 부진해도 특정 선수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신뢰를 보내면서, 다른 선수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말로 ‘감’으로만 팀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437839

 

 

 

 

  KT와의 3연전을 시리즈 스윕으로 마무리한 기아타이거즈는 롯데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을 맞이합니다. 윤석민 선수의 복귀 후 두 번째 선발 등판. 이에 맞서는 롯데자이언츠의 선발은 듀브론트였습니다. 지난 두산전에서 윤석민이 보여준 피칭만으로는 선전을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4~5점 정도를 실점하고 듀브론트를 공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윤석민은 번즈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고 5이닝을 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하고 맙니다. 승리를 기대했지만 승리를 예상하거나 확신한 건 아닙니다. 야구가 원래 그러니까요. 양현종이나 헥터 노에시와 같은 현재 타이거즈의 원투펀치가 마운드에 올라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데, 하물며 오랜 공백 끝에 복귀했고 지난 등판에서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윤석민의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위권으로 내려앉은 롯데자이언츠를 상대로 한 경기였지만 분명 선발 매치업에서 밀리는 경기였습니다. 찬스 때마다 타자들이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좋은 기회들이 무산되면서 9:1로 경기가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8회 버나디나가 솔로홈런을 터트렸고 9회 뒷심을 발휘하며 유민상의 투런홈런을 포함, 4점을 더 보태 9:6의 스코어를 만들었습니다. 경기 후반(특히 9회)만 되면 전혀 득점을 뽑아내지 못했던 타이거즈의 타격 리듬을 생각하면 8, 9회의 5득점은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졌습니다. 아프지 않은 패배는 없으나, 패배보다 더 뼈아픈 건 타이거즈의 내홍이었습니다.

  6월 8일(금), 임창용과 정성훈 선수, 그리고 이대진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잡음이 들리지 않았고, 감독의 적극적인 코멘트가 있었다면 ‘내홍’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6월 7일(목)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기아타이거즈갤러리에 임창용 선수와 정성훈 선수가 2군으로 내려갈 거라는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임창용 선수가 이대진 코치와 김기태 간의 갈등이 있었고, 이에 김기태 감독이 정성훈 선수를 묶어 세 명을 2군으로 내려보낼 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커뮤니티 특성상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신뢰하진 않았지만, 다음 날 거짓말처럼 두 명의 배테랑과 투수코치가 말소되었습니다.

  팀은 4연승 중이었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코멘트 외엔 별다른 해명이 없었습니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920643

  임창용 선수는 어깨에 담이 있다는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고, 정성훈 선수에겐 휴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920759

  현재 정성훈 선수에게 휴식이 필요한가, 라는 의문은 일단 제쳐두기로 합니다. 더 중요한 건 임창용의 말소입니다. 어깨에 담 증세가 있다는 건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고, 김기태 감독은 임창용의 말소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츠조선 기사에서는 김기태 감독이 임창용의 말소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고 했습니다. 임창용 선수의 담 증세는 구단 관계자가 논란을 의식해 임의적인 변명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로 임창용 선수에게 담 증세가 있었다면 김기태 감독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말을 아끼는 대신, 임창용 선수의 어깨 이상을 분명히 언급했을 테니까요.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806080100070020005236&servicedate=20180608

 

  분명히 말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썰’을 더욱 신뢰하게 만듭니다. 많은 팬들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말소 정보가 부산으로 이동 중인 선수나 코칭스태프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팬들이 아무리 인맥이 좋아 팀 내부 사정에 촉각을 곤두세워도 새어나올 만한 정보가 있고 그럴 수 없는 정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수원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그 시간대에 커뮤니티를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서 언급된 것처럼 두 명의 베테랑과 한 명의 코치가 말소되었습니다. 이대진 코치의 말소야 그렇다치더라도 기아타이거즈의 현재 절대 전력인 마무리 임창용 선수와 클러치 능력이 뛰어난 대타요원인 정선훈 선수를 중요한 시기에 2군에 내려보냈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커뮤니티 정보에 따르면 임창용 선수와 코치, 감독 간의 언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기태 감독이 투수들에게 원하는 보직을 써내라고 했다는 걸 보면 투수들의 보직 문제 때문에 생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추론해야 합니다. 임창용 선수는 투수조 최고선임으로서 후배들의 고충을 피력했을 것입니다. 이대진 코치는 팀 사정상 투수들의 보직을 변칙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을 것이고, 어느 순간에 김기태 감독이 개입했겠지요. 김기태 감독은 단단히 화가 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거라면) 김기태 감독이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요? 야구시스템이 선진화되면서 투수들에게 보직이 생겼고, 투수들은 적어도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등판할지 예측하며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어갑니다. 야구는 멘탈의 스포츠라서 그 루틴이 지켜지느냐, 그렇지 않고 흔들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임창용 선수가 많은 것을 요구한 건 아닐 것입니다. 항의가 아니라 건의를 했을 확률이 높고요. 그런데 결과는 2군행입니다. 이 과정에서 임창용 선수가 은퇴까지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 감독의 대처가 참 아쉽습니다.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선수단의 항명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처럼 소통이 강조되는 시대에 ‘항명’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형님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어간다고 정평이 나 있는 김기태 감독이지만, 그는 알려진 바와 달리 무소불위 권력으로써 팀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감독인 거죠. 아무리 화가 나도 팀을 더 우선시해야 합니다. 당장 임창용 선수와 정성훈 선수를 최소 10일 정도 전력에서 배제시킴으로써 팀은 몇 경기를 더 손해보게 될까요? 감독이 책임진다고요? 임창용과 정성훈이 없어서 달성하지 못한 1승, 상대팀에게 내준 1패, 그것을 어떻게 책임을 질 수가 있습니까. 김기태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1, -2, -3은 곧바로 만회되지 않습니다. 감독이 책임진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김기태 감독은 책임진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게 오해이길 바랍니다. 억측이고 낭설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도 모든 합리적 의심을 깨끗이 지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할 수 있다면 더 명확하게 해명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過)가 있으면 시인하고 인정하길 바랍니다.

 

  어제 경기에서의 1패보다 더 아픈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을 우리가 버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경기의 패배 이외에 다른 이유로 슬퍼할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5월 마지막 경기.

 

5할, 

현재까지 시즌 성적 5위.  

 

윤석민이 돌아온다.

 

  5월 31일, 기아타이거즈가 넥센히어로즈를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히어로즈와의 시리즈 첫 경기가 아쉬워진다. 로저스를 상대로 5점을 뽑아낸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선발 팻딘이 너무나 많은 점수(7실점)를 내주며 무너졌다. 팻딘에 이어 등판한 계투진들마저 꾸역꾸역 5실점을 했고, 승부는 기울었다. 경기 후반 3점을 보태 12:8의 스코어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냥 패배일 뿐이었다. 5월 30일 수요일 경기는 임기영이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득점권에 선 타자들이 상대 투수 한현희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히어로즈보다 더 많은 찬스를 잡고도 1점밖에 내지 못한 타선의 부진도 자못 아쉬워진다.

 

  히어로즈와의 지난 시리즈에서도 루징을 당하고 이번 시리즈에서도 루징을 당했다. 어제 경기마저 내주었다면 히어로즈와의 시즌 전적에서 ‘5:6’의 열세에 몰리게 되는 상황이었고, 승패 마진 또한 -2가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5월까지 승률 5할이다.

  6월의 첫 시리즈 상대가 두산베어스다. 6월 1일, 오늘 매치업은 양현종과 린드블럼이다. 양현종은 언제나 마운드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내는 선수지만 운이 따르지 않는 경기도 많았다. 그러나 6월부터는 진짜 전쟁이다. 더 이상 ‘5할 놀이’를 하며 ‘하위권 같은 중위권’에서 헤맬 때가 아니다. 선수들도 코칭스태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언제나 타이거즈의 시즌의 성패를 어깨에 짊어져온 양현종은 남다른 각오로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오늘 자신이 잘 던져야, 거의 2년 만에 선발로 등판하는 윤석민 또한 잘 던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윤석민이 오랜 재활을 끝내고 그라운드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지만, 양현종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선발진에 윤석민이 합류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뜨겁게 한다.

 

 

 

  2018 시즌, 진짜 승부가 시작되는 여름(6~8월)의 시작과 함께 윤석민이 돌아온다.

  윤석민의 선발 매치업 상대는 후랭코프가 될 것이다. 시즌 초반 1점대 ERA로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압도한 투수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ERA가 부쩍 높아졌다. 작년 트리플A에서 선발로테이션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은 투수가, 올 시즌 비교적 많은 이닝을 책임지며 선발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 탓에 체력이 저하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적인 투수지만 윤석민 또한 타이거즈의 에이스로서 오랫동안 마운드를 지배해온 선수이니만큼 흥미로운 매치업이 될 것이다.

  두산베어스와의 3연전 뒤 기아는 주중시리즈에서 KT위즈, 주말시리즈에서 롯데자이언츠를 만난다. 두 팀 다 이번 시즌 빚을 많이 진 팀이다. 약팀에 약하고 강팀에 강하다는 올 시즌 타이거즈에 대한 평가가 윤석민의 합류로 인해 뒤집어지길 기대한다. 윤석민 선수는 분명 우리가 지금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너지를 팀에 불러올 것이다.

 

 

  6회초 타이거즈 공격, 이범호와 나지완이 각각 2루와 1루에 위치해 있는 상황이었다. 타석에 들어온 건 한승택. 시리즈 첫 매치에서 데뷔 첫 홈런과 연타석 홈런을 몰아쳤고, 오늘 전 타석에서도 안타와 타점을 기록했던 그였다.

 

  벤치의 선택은 보내기 번트였다. 보내기 번트 또한 요긴한 작전 중의 하나지만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스코어는 물론이고 상대 투수의 구종과 구위, 마운드에서의 상태, 작전을 수행할 타자의 능력과 누상에 나가 있는 주자들의 주루 능력, 그리고 후속 타자의 클러치 능력 등이다.

  마운드의 정수민은 연속 볼넷을 내주며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즉, 상대 투수의 구종이나 구위가 압도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내기 번트 사인을 낸 벤치의 선택은 아쉬웠다. 더군다나 5: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점수가 필요치 않는 건 아니었지만 아웃카운트 하나를 버리면서 기대할 수 있는 점수는 고작해야 겨우 1점이다.

  볼카운트는 투볼이었다. 아무리 희생번트 상황이라 하더라도 볼카운트 상황에 따라 작전은 달라져야 한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확보한 상황에서 희생번트는 오히려 상대 투수에게 이득이 된다. 한승택의 번트는 실패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한승택의 보내기 번트가 실패한 적은 없다.(잘 찾아보면 있을지도.)

  그러나 다음 타석은 최정민과 이명기였다. 최정민은 버나디나가 빠져 있는 외야 한 자리를 채우며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는 선수였지만 다이노스와의 연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이명기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타이거즈 우승에 핵심 역할을 수행한 그였지만, 올 시즌 전혀 자신의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벤치에서는 후속타자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작전 실패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작전은 실패했다. 패착이었다. 이 대목에서 코칭스태프, 대표적으로는 김기태 감독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은 선취점에 대한 강박증이 크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희생번트를 해서라도 한 점을 선취하면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예전엔 그랬다. 지금도 마운드에 선 투수에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타고투저의 리그의 특성이나 취약한 타이거즈 계투진의 면면을 생각하면 그 1점의 점수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선취점을 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5:0의 스코어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최근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는 한승택에게, 누상에 주자 이범호와 나지완이 나가 있는 상황에서, 후속타자 최정민과 이명기를 두고, 번트 사인을 냈다. 김기태 감독의 고집이다. 답답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작전이었다. 실제로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의 능력보다 그가 믿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확실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 김기태 감독이지만, 그라운드 내, 경기에 관여하는 요소요소에 대해 자신이 불필요하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6회는 결국 득점 없이 끝났고, 타이거즈는 7회 2점, 8회 2점, 9회 3점을 더 뽑아 12:1 대승을 거두었다. 7~9회 공격에서 번트는 없었다. 번트 없이도 7점을 냈다. 만약 6회 공격에서 벤치의 선택이 번트가 아니라 강공이었다면 6회에 경기를 확실히 가져올 수도 있었다. (한승택은 다음 타석에 보란 듯이 안타를 기록했다.)

  개인적으로 보내기번트는 확실한 투수전에서 한 점을 얻어내기 위해, 박빙 승부에서 한 점을 얻어내기 위해 (그것도 위에서 언급했던 조건들이 유리할 때) 수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 시즌 타이거즈 우승을 일궈낸 김기태 감독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올 시즌, 투수교체 타이밍을 놓쳐, ‘버릴’ 경기도 아닌 경기가 ‘버려지는’ 경우도 있었고, 전혀 신뢰할 수 없는 투수가 등판하여 내준 경기도 있었다. 5선발 체제가 더디게 갖춰졌고, 계투진 상황은 작년보다 오히려 안 좋아진 상황에서 감수해야 할 면도 있지만, 스포츠에서 당연한 패배는 없다. 다이노스와의 시리즈에서 우세를 점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마지막 경기 6회초 공격에서 보여준 코칭스태프의 패착이, 이미 많은 팬들이 허탈하게 받아들였던 ‘당연한 패배(들)’와 무관하지 않다.

 선발투수 팻딘이 6이닝을 책임지며 4실점했다. 빼어나진 않지만 준수했다. 그가 4점을 내줬지만 타선에서 무려 8점을 생산했다. 김윤동이 2이닝을 훌륭하게 막아주었고, 9회, 단 한번의 수비에서 4점이라는 넉넉한 점수를 지켜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김세현이 올라왔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가 올라오는 순간 낙담했다. 최근에 연투를 거듭한 임창용의 피로도를 감안하면, 김세현을 내보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김세현이 마운드에 오른 후의 4점은 그다지 여유 있는 점수 차가 아니었다. 코칭스태프에서 김세현의 등판을 결정하기 직전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마무리투수의 구위를 전혀 갖추지 못한 김세현이 2군에 내려갔다가 1군에 올라온 이후 제대로 공을 던져본 것은 단 한 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1군에 등록된 이후 (5월 17일) 어제까지(5월 23일) 약 일주일간 단 한 차례밖에 등판하지 않았다는 것은 2군에 다녀온 이후에도 구위가 심상찮았다는 방증이다.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 그것도 투수가 - 굳이 1군에 있을 필요는 없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스코어 상황에서 김세현이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김세현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 팀을 위한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임창용이 잘 막아주고 있지만 연투를 거듭하면서 저하되는 체력도 염려치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세현이 4점차를 지켜주고 5연승으로 이어진다면, 상위권 도약의 청사진 또한 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봄밤의 꿈보다 더 짧으므로 일회(一回)춘몽이라고 해두자. 김세현의 등판은 결국 실패했다.

 

  김세현은 윤석민, 이진영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무사 1, 2루를 허용한다. 오태곤의 까다로운 땅볼 타구를 잘 잡은 안치홍이 김선빈에게 토스한 공이 베이스에서 한참 먼 곳에 떨어진다. 실책이다. 무사 만루. 김세현은 강판당한다.

  안치홍의 실책이 없었더라면 적어도 경기는 뒤집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안치홍의 수비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무사 1, 2루의 상황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실책이다. 

 

  김세현이 마운드에 오르기 전의 상황을 보자. 8:4의 스코어를 실점 없이 막아낼 확률은 꽤 높았다. 그러나 그것은 임창용이 등판하는 경우였다. 임창용 또한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는 하드한 상황을 자초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어찌됐든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타이거즈에서 김윤동과 함께 가장 미더운 불펜요원이었다. 그러나 마운드에는 임창용이 아닌 김세현이 오르면서 실점 없이 막아낼 확률이 낮아졌다. 그리고 무사 1, 2루가 되었고, 안치홍의 실책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무사 만루, 5일 휴식을 취한 양현종이 등판한다고 가정해도 무실점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임창용은 무사 만루에서 등판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몸이 덜 풀린 채로 올라온 임창용은 최선을 다했지만 패배를 막을 수는 없었다.

 

  KT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오늘도 경기는 열린다. 이전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임기영이 선발로 나선다. 내심 시리즈 스윕을 기대했지만 마음처럼 안 되는 게 야구 아닌가. 두산베어스가 한화이글스에게 2패를 당하며 시리즈 열세가 확정된 상황에서 한화의 기세를 어떻게 막아낼지도 궁금하다. 아직은 중위권이지만 여전히 선두권 또한 가시권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세현이 가세한 타이거즈의 전력이 매번 마이너스가 된다면 김세현이 굳이 1군에 머물 필요가 없다. 그가 2군에 내려가 있는 12일 동안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알 필요가 있다. 무조건 모두가 함께 갈 수는 없다. 코칭스태프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동행에 동참할 수 있는 실력과 정신무장도 필요하다.

 

* 울지 마, 팻딘!!

 

 

2017 시즌 통합우승, 기아타이거즈.

 

타이거즈는 2018 시즌에도 우승후보이다. 전문가들도 10개구단 팬들도 타이거즈를 우승후보로 거론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최근 4연패, 5할 승률에서 다시 ‘-1’이 되었다. 넥센히어로즈와의 3연전을 모두 가져왔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LG트윈스에게 루징을 당한 충격(이라고 하기엔 과하고 찜찜함 정도)을 잊고 초반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그 때 이미 3위였고, 선두권으로 분류되었다.)

이어 만나는 팀이 다소 전력이 약한 한화이글스였으므로 최소한 ‘위닝(+1)’을 기대했다. 한승혁이 오랜만에 선발로 등판한 4월 10일 경기, 한승혁은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으나 타격에서의 응집력이 부족했다. 우리 타자들은 많은 안타를 쳐냈으나 득점을 생산하지 못했고, 상대 타자들은 그걸 해냈다. 경기의 승패는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데서 갈렸다. 할 말이 없는 경기였다. 호잉을 막지 못했다. 더 냉정히 말하면 호잉을 돌려세울 만한, 가용한 투수자원이 없었다. 타이거즈의 불펜은 ‘김윤동-임창용-김세현’ 정도의 조합으로 구축되는 듯했으나 부진한 김윤동을 대신해 임기준과 박정수가 임창용 앞뒤로 던지고 있는 추세다. 한화와의 첫 경기는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불펜진의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4월 11일 경기는 정용운이 선발로 나섰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어 등판한 이민우, 작년 후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올해 그는 불필요한 중압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민우가 꾸역꾸역 고비를 잘 넘기며 버텼고, 5회 최형우의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런데 이민우가 크게 흔들리면서 다시 역전을 내주었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안 좋을 때의 임기준의 모습을 팬들은 정확히 알고 있다. 앞으로 그런 모습이 노출되었을 때 코칭스태프에서 좀더 빨리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4월 12일, 선발은 헥터 노에시였다. 그의 1회 투구를 지켜보며 직감했다. 헥터가 시즌에 한두 번 크게 무너지는 경기가 있는데, 올 시즌은 ‘오늘’일 거라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헥터 노에시는 무려 7실점을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원투펀치가 무너진 경기는 별다른 코멘트를 남길 수 없다. 이 날 경기 결과는 뉴스로 확인했다. 무려 2083일만에 한화이글스에게 스윕패를 당한 날이었다.

 

4월 13일, 롯데자이언츠를 맞아 양현종이 분전했지만 (그래서 더욱 이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허무하게 경기를 내줬다. 이 날 패배의 책임은 전적으로 불펜에 있다. 최악의 투구였다.

 

4월 14일,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었다. 잘 된 일이다. 어수선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잘 추슬러 경기를 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