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이종범 선수는 자신의 은퇴 시기는 스스로 정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 왔지만 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2013년이 선수로서 그의 마지막 해였다는 것을. 그러나 선동렬 전 감독은 스스로 시기를 세우고 마지막 한해를 준비했던 그를 압박해서 그라운드 밖으로 내몰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아닌, 자신을 오랫동안 지지해준 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시작 전부터 담배를 끊고 운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자신이 뜻한 바대로 되지 않았고 201341, 거짓말처럼 그는 은퇴를 했다. (공식적으로 보도가 된 건 3월 마지막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종범 선수만큼 팬들은 아쉬워했고 구단과 선동렬 감독을 비난했다. 적어도 타이거즈 팬들에게 이종범 선수는 타율, 타점, 도루, 득점 등등 어떤 수치로서 환산되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너무나 허무하게 팀을 떠났다. 다른 팀에서라도 뛰려고만 했다면 방법은 있었겠지만 그에겐 타이거즈가 아니라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이종범은 그런 선수였다.

 

 

 

 

 

  이종범 선수는 옛 스승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이글스 코칭스테프로 합류하게 됐다. 작전코치였지만 그래도 그가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한화이글스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있다.

 

  아주 오래 전의 한대화가 그랬고 장성호가 그랬다.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타이거즈를 상대하는 그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최근엔 이용규가 그런 경우이다.

 

   이용규는 LG에서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타이거즈 팬들에겐 프랜차이즈스타나 다름없었다. 매년 슬럼프를 겪었지만 충분히 제 몫을 해주었고 특유의 근성을 보여주며 타이거즈의 투혼의 대명사가 되어주었다그래서 많은 팬들은 그가 타이거즈에 남길 바랐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기 싫었다.

 

  그런데 그가 팀을 떠났다.

 

  그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전했을 때만 해도 팬들은 구단 측에서 분명 그를 서운하게 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일종의 언론플레이를 한 셈이었고 이미 한화이글스 행이 약속돼 있었다.(라는 게 확실한 정황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4년엔 부상 때문에 제대로 경기에 뛸 수 없었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재활을 했다. 2015, 그는 성공적으로 재활을 끝냈고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화이글스가 시즌 내내 중위권에서 버틴 데는 이용규의 힘이 컸다.

 

  2015822, 그는 비록 5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에이스 양현종에게 열일곱 개의 공을 던지게 하는 등 끈질긴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문제적 장면은 6회말 한화이글스 수비에서 발생했다. 21루였고 브렛필이 그 날 경기 로저스의 79구째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이용규가 빠른 발로 달려와 그 타구를 잡아냈고 3루심도 노바운드 캐치를 선언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1루 주자였던 박준태는 3루에 멈춰 있었고 타자 주자 브렛필은 1루에 머물러 있었다. 이용규는 마운드까지 달려와 노바운드 캐치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김기태 감독은 곧바로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김성근 감독은 6회 공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 선수들을 덕아웃으로 불러들였다. 이 장면은 좀 아쉬운 장면이었다. 비디오판독 신청이 들어간 상태에서 수비 팀이 (어떤 결과를 확신할 수 있다고 해도) 그라운드에서 철수한 것은 상대 팀은 물론이고 홈팀 팬들에게도 실례를 범한 경우이다.

비디오판독 결과 바운드가 된 직후에 이용규가 공을 잡았다는 사인이 나왔고 이용규의 허탈한 표정이 중계카메라에 잡혔다. 충분히 아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용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전혀 엉뚱한 데서 문제가 터졌다. 외야석에 있던 한 관중이 이용규를 향해 얼음물병을 던진 것이다. 일단 이러한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그러나 이용규의 대응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그 관중과 1:1로 대응을 하려는 듯이 관중석을 돌아보며 인상을 구기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욕설을 내뱉는 입모양이 그대로 잡혀 팬으로서 참 민망한 상황을 보고 만 것이다.

 

 

  첼시의 심장을 품은 채 맨시티로 이적한 램파드는 2014922, 첼시를 만나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고도 별다른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다. 그건 첼시와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첼시 팬들에 대한 예의이자, 오랜 기간 첼시에 몸담았던 자신에 대한 예의이다. 해외축구 문화와 KBO리그 문화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이용규가 9년 동안 몸담았던 팀과,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 그리고 과거 타이거즈 소속이었던 자기자신에 대한 예의를 조금만 갖췄더라면 적어도 그런 제스처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의 이용규에겐 타이거즈 유니폼보다는 이글스의 유니폼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양현종이 타이거즈의 에이스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에이스는 팀의 상징이자, 팀의 자존심이다. 8월 4일 타이거즈의 상징이자, 자존심인 양현종이 무너졌다. 이 경기에서만 네 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이 경기 전까지의 피홈런 개수는 아홉 개였으니 두 달 동안의 허용치를 단 하루만에 허용한 셈이다.

 

  지난 시즌을 회고해 보면 양현종은 팀이 연패 중인 상황에 많이 등판했다. 그만큼 타이거즈의 연패는 많았고, 양현종이 고군분투하는 게 타이거즈가 보내는 시즌의 일반적 풍경이었다.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마음이 애잔해졌다. 팀 상황은 갈수록 안 좋아지는데, 팀을 향한 바람을 모두 그에게만 지운 것 같아서였다.

 

 

  난 양현종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되었을 때 내심 기뻤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팬으로서 기쁜 일이지만, 난 그가 타이거즈 에이스로서 다시 한번 2009년의 환희와 영광을 팬들에게 선사해주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타이거즈가 리그를 좌지우지하는 풍경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기아 프런트는 김기태 감독을 선임하면서 당장의 성적보다는 미래를 위한 리빌딩 작업에 착수해줄 것을 부탁했다. 

  과연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등장했다. 시범경기 때만 볼 수 있던 백용환이 정규 시즌 중에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공격형 포수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상훈과 차일목의 그늘에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이성우도 꾸준히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이홍구도 눈에 띄게 성장 중이다. 비록 이성우는 부상 이후 2군에 머물고 있지만 엔트리가 확대되는 시점 전후로 다시 1군에 오를 것이다. 믿을 만한 포수 자원이 없어 고민이 많던 타이거즈가 포수 왕국을 꿈꾸고 있다고 해도 비웃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야의 김호령과 내야의 박찬호 등도 1군에 더 어울리는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집념은 팀의 분위기를 바꾸거나 팀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적이 많았다. 이밖에도 황대인이나 윤완주도 1군에서 꾸준히 기회를 받을 것이다. 

  가장 관심이 많은 자원은 역시 투수다. 고졸 신인 박정수가 올스타브레이크 전후로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고, 시즌 초반 지독한 성장통을 겪은 문경찬과 임기준이 1, 2군을 오가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리빌딩은 신예들로만 팀을 구성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웬만한 야구 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기태 감독의 조직 능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기태 감독은 베테랑급 선수들의 가치를 인정해주며 그들이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타이거즈가 밀리는 전력으로도 지금까지 5할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김기태 감독의 베테랑들을 향한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그들의 응답 덕분이다. 

 

  

  다시 양현종이다. 

 

  6연승 이후 마운드에 올랐고 양현종은 5이닝 8실점을 했다. 독감을 안고 공을 던진 투지를 차치하고서라도 어제의 경기가 팀과 양현종에게 큰 리스크가 될 수는 없다. 다시금 에이스 양현종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어제의 양현종은 또 금세 잊을 것이다. 어느 팀의 에이스라고 해도 완성된 에이스는 없다. 에이스도 성장해야 하는 선수들 중의 한 명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에이스는 스스로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 스스로 성장한다. 어제의 양현종은 오는 8월 9일 새로운 양현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여전히 타이거즈는 만들어지고 있다. 팬들이 더 열성으로 응원을 보내야 하는 이유이다. 

 

    

 

 

 

 

  [적의 사과]는 영화의 첫 시퀀스에 시위대와 진압대의 대치 장면을 담는다. 두 집단의 대치 장면은 영화에서 생략하고 있는 거대 서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시위대와 진압대는 직접적인 갈등을 빚어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시위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주도한 것인데, 그들의 노동권을 박탈한 주체는 진압대가 아닌 것이다. 진압대는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적의는 오로지 진압대를 향하여 발산된다. 노동자들로 이뤄진 시위대가 진압대를 향해 겨누는 팔매질이 진압대원들을 가격한다 하더라도 그 충격파는 당대 정권에 전해지지 않는다. 정부는 진압대 뒤에 은닉한 채로 진압대를 조종한다. 모든 명령은 진압대에게 충실하게 전달되지만 진압대원들조차 명령의 발원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진압대원들에겐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이 누구의 명령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진압대원들은 전투경찰일 뿐이며, 전투경찰은 뒤에 은닉해서 자신들에게 ‘오더’를 내리는 거대한 실체보다, 눈앞에 실재해 있는,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실체를 훨씬 더 가깝게 인식한다.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며, 그 사명을 어기는 것은 국가에 복속된 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므로 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적의 사과]의 메시지는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한 골목, 대열에서 이탈한 전투경찰과 진압대의 진압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고립된 노동자의 대치 상황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왜곡돼 있는 적의 실체는 분명한 개인으로서 다시 한번 왜곡되고, 전투경찰(김민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구도는 한국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권력의 모순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경찰의 헬맷을 이용한다. 입대한 지 4개월밖에 안 된 전투경찰에게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보호구를 되돌려 받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치 상황에서는 시위대 전체와 전경대 전체의 대치에서 펼쳐진 긴장감이나 폭력성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치하는 와중에 노동자가 품고 있던 사과를 먹으려다가 그 사과를 떨어뜨리기도 하는 등 유머러스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 유머가 단순히 관객을 웃기기 위한 유머는 아니다. 유머를 통해 둘의 관계가 화해에 이르게 될 수도 있겠다고, 관객들은 짐작하지만, 그 유머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한 조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조소는 다시 공동체 단위의 대치 상황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갈등 상황을 야기한다. 전투경찰이 자신의 물과 노동자가 들고 있는 헬맷을 교환하자고 제안을 하고 노동자 또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노동자가 헬맷끈을 빙빙 돌리는 바람에 헬맷은 맨홀 아래로 빠지고 만다. 이때 이들의 갈등은 재점화되고 서로 몸싸움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한쪽 팔이 부러지고, 전투경찰은 왼쪽 허벅지에 상해를 입게 된다. 장난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던 물물교환은 다시 심각한 격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둘은 담벼락 앞에서 대치를 이어나간다. 그들 머리 위로는 담장과 허공을 가로지르는 전선이 수평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대치가 영원히 화해에 이를 수 없음을 암시하는 배치라 할 수 있다. 서로 불분명한 적과 싸우고 있으므로 그 싸움은 진정한 의미에서 종결을 맞이할 수 없다. 유머가 어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서로의 정체성을 포기한 상태에서의 가능성, 다시 말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했을 때의 가능성이지, 정리해고된 노동자와 전투경찰로 맞서게 되는 상황에서는 그 가능성이 현현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지루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공간에 ‘지랄탄’이 날아든다. 노동자는 그것을 보고 ‘지랄하고 있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자신과 전투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조소임과 동시에, 두 사람이 자각하지 못한 모순적 현실을 향한 연출자의 목소리라고도 볼 수 있다. 나란히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오줌을 갈기는 소년의 모습 또한 의미 없는 싸움을 향한 유머이다. 그러나 역시 [적의 사과]에서의 유머에는 맘놓고 웃을 수가 없다. 유머의 이면에는 이 사회의 불합리와 불평등, 모순과 부정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적체돼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김상현이 있었다. 그가 우리 팀에서 SK로 넘어갔을 때 충격이 적지 않았다. 상대가 SK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송은범이라는 건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프로의 세계이고, 프로는 그 세계의 룰대로 적을 옮기는 게 마땅한 일이지만 그를 오랫동안 응원해온 팬의 입장에서는 이별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프로인 그에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문학경기장을 찾은 한 타이거즈 팬이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자, 기아로 해줄까요, SK로 해줄까요, 라고 물었다던 일화는 SK 팬들이 공노할 일이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내친 구단과 감독에 서운한 마음이 컸을 텐데도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에게는 타이거즈의 김상현이란 이름으로 인사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읽혀서 마음이 아팠다.

  그가 다시 KT에 특별지명되어 팀을 옮겼을 때, 조금이나마 미안함을 덜 수 있었다. 마침 KT의 사령탑이 2009년 자신의 전성기를 옆에서 지켜보고 이끌어주었던 조범현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된 장성호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KT 위즈를 응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상현의 왼쪽, 그라운드의 최후방에는 이대형이 서 있었다. 타이거즈에서 딱 한 시즌만 있었을 뿐인데, 난 그를 김상현만큼이나 쉽게 잊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래서 그런지 중계화면에 잡힌 이대형의 표정은 늘 어두운 것 같았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말 야구가 재미없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대형을 잃고 시즌을 맞이하고 팀은 개막 6연승을 달렸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대형이 전 시즌 유일한 3할 타자여서가 아니었다. (여기서부터는 무논리다.) 그냥 난 이대형이 좋았다. 그가 LG에 있을 때부터 고향팀에 와서 뛰어줬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거짓말처럼 타이거즈에 오게 되었다. 이용규의 대체자원이었지만 이용규를 능가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2014 시즌도 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그래도 야구 볼 맛이 났던 건 이대형이 있어서이다. 물론 주루사도 많이 당하고 도루 실패도 많았다. 하지만 나같은 팬은 프로가 아니어서 어떤 수치에 의존해서 선수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20인에 들지 못하고 KT로 가게 되었다. KT에 가면서 그가 남긴 코멘트는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였다. 그는 KT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초반에 분위기가 타이거즈 쪽으로 기울면서 난 경기보다는 김상현과 이대형, 둘의 움직임에 더 신경이 쓰였다. 승패와는 상관없이 둘 다 잘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둘을 지켜보았다.     

  이대형은 6회에 볼넷을 얻어 출루했고, 8회에는 안타를 치기도 했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러나 김상현은 한 번도 출루하지 못했다. 다만 경기 중반 외야에 있던 관중들이 김상현의 이름을 연호했는데, 그가 들고 있던 공을 던져주었다. 또 한번 가슴이 찡했다.

  KT는 그래도 잘하고 있다. 2013 시즌 NC만큼은 아니지만 적극적인 트레이드와 외국인 선수 영입을 통해 상대 팀이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이 되었다. 이번 주말에 타이거즈를 만나기 전에도 NC에 위닝시리즈를 거두지 않았나. KT는 더 강해질 것이다.

  KT를 응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이거즈가 패망하길 바라진 않는다. 팬이라는 게 그렇다. 내일부터 내가 기아 야구 보면 사람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 당장 내일이면 멀쩡한 사람의 모습으로 TV 앞에 앉아 있다. 실제로 팀을 바꾸는 사람도 여럿 보긴 했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팀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팬들도 어느 정도는 프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 김상현은 올 시즌이 끝나면 FA가 된다. 현실성은 심히 떨어지지만 난 그가 FA를 통해 다시 타이거즈에 돌아오면 좋겠다. 논리는 없다. 그냥이다. 그냥, 그가 좋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이대형도!

 

20150315 윤석민

야구2015. 3. 16. 01:41

 

  윤석민이 돌아왔다. 금의환향은 아니다. 그는 분명 실패했다. 스포츠 일간지들은 윤석민의 한국 복귀 소식을 앞다퉈 쏟아냈다. 윤석민과 볼티모어, 그리고 기아타이거즈 간의 손익 계산까지 따져보는 기사문도 있었다. 윤석민의 가세가 타이거즈 팀 전체에 미칠(이미 미치고 있는) 영향을 분석한 기사문까지 모두 훑어보았다. 설렜다. 기사를 읽는 게 재미있었다. 정규리그가 개막하기도 전인 3, 오키니와에서 연일 열리고 있는 연습경기에서 타이거즈가 전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뉴스보다 더 참담하게 들려오던 그 때, 윤석민의 복귀는 그 사실만으로 날 들뜨게 했다.

 

  진짜다.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다.

 

 ‘돌아와 버렸다는 하나의 완료된 사건이고, 그래서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체념이나 절망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아니다.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으므로 타이거즈는 더이상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팀이 돼버렸다. 물론 윤석민이 있었던 2013년도 정규리그 8위에 그쳤다. 하지만 2013년의 윤석민은 완전한 몸으로, 그리고 안정된 보직으로 공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았고, 그가 있었으므로 2013년 시즌을 꾸역꾸역 꾸려갈 수 있었지만, 그가 없었다 한들 2013년의 레이스가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진짜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다.

 

  2014년 볼티모어에 적을 두고 있던 윤석민이 타이거즈를 떠나 있던 그 해의 성적에 대한 빚을 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난 그가 타이거즈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그를 그리워했다. 야구는 전년도의 성적으로 다음 시즌의 성적을 예상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객관적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관람하는 팀의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나의 팀에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타이거즈가 비록 2013년에 성적이 바닥을 쳤다 해도 2014년에도 비슷한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하는 은 아무도 없다. (뼛속까지 타이거즈 팬이라면서 타이거즈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진짜 팬은 아니다.) 전년도 성적이 좋지 않았어도 다음 시즌에는 전년도보다는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하는 게 진짜 팬의 마음이다. 그래서 2014년의 타이거즈를 응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4년 시즌을 지켜보면서 윤석민의 가세를 가정하고, 양현종만으로 견고하게 구축되지 않는 타이거즈의 선발진을 상상으로 꾸려보기도 했던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라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모두는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윤석민이 굳이 져야 할 빚이 있다면 2014 시즌, 팬들이 가장 강력하게 원하고 기다렸던 자신의 귀환을 1이나 늦춰 이뤄준 것에 대한 빚이다. 그 빚의 탕감은 당연히 2015 시즌의 성공이다.

 

  진짜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다. 정확히 527일만이다.

 

  그는 315LG와의 시범경기 2차전에서 안익훈, 최승준, 김용의를 상대했다. 18구를 던졌고, 그 중 직구 최고 구속은 146km였다. 노포크에서 던질 때 최고 구속이 130km 중후반이었던 걸 고려하면, 그의 몸은 작년보다 훨씬 더 좋아진 상태라는 뜻이다.

 

  그와 함께,

 

  진짜 타이거즈가 돌아올 것이다.

 

 무한궤도 1[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타이틀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였다. 그 노랫말 중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라는 구절이 있다. 1989년에 나온 앨범이지만 난 그 때만 해도 무한궤도에 관심이 없었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아, 앨범 타이틀보다 먼저 더 유명해진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겨우 알고 있을 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 방이라는 게 생겼고(동생과 같이 쓰긴 했지만) 나는 마이마이카세트를 엄청난 노력 끝에 얻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미니카세트를 끼고 누워 라디오를 듣는 게 일이었다. 그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정오의 희망곡이었다. 정오가 되면 가방 속에 숨겨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다 선생에게 걸리면 빼앗겼다.)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4교시가 끝나면(1240분쯤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얼른 B면으로 돌려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불편해서 리버스 녹음이 된다고 하는 정말로 말로만 들었다. - SONY가 무척이나 갖고 싶었다.) 녹음된 프로그램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들었다. 51번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30분 가까이 버스를 타야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시간을 견디는 건 고역이었다. 하지만 정오가 한참 지나 듣는 정오의 희망곡이 있어서 괜찮았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난다. DJ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성우였던 걸로 기억한다. - 그 날 DJ는 비오는 날 와이퍼 소리가 좋다고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앞유리에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마침 버스도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와이퍼가 흔들리는 걸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옆 차창에 빗물이 맺히는 걸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싱숭생숭했다고 할까? - DJ싱숭생숭이란 표현을 했던 것 같다. - 당시의 내가 그 이상한 기분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답답해 했다는 것도 기억난다. 신해철의 목소리는 비가 내리는 날, 땅바닥에 낮게 깔리는 안개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안개가 흩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걸어간 아침의 길 끝에 (정류장 부근을 나는 길 끝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먼저 와서 딛고 서 있는 바람 같은 느낌이었다. 발목이 시리도록 안개가 서성이고, 바람이 허공을 흔들어 고여 있던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았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춰섰지만 난 느끼지 못했다. 다만 빗방울들이 흘러내리면서 나에게 써 보인 말들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시선을 옮겨 옆의 차창을 바라보면 모르는 이름이 쓰여 있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름과 얼굴이 질문일 수도 있고 그것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히)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살았다고) 최소한 30분보다는 더 긴 시간이 말이다. 그런데 아깝지 않았다. 끝나가고 있다는 건 상실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끝도 안 보이는 생이 낯선 질문 앞에서 어물쩍 흘러가주는 것이 고마웠다. 신해철의 노래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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