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버드맨]의 진실게임

영화2016. 12. 25. 21:21

  <버드맨>진실게임이다.

 

  한때 잘 나가던 무비스타였던 리건(마이클 키튼)은 배우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 브로드웨이 공연을 준비하는데, <버드맨>이 묻는 진실과 거짓의 문제는 그 지점부터 출발한다. 리건의 주위를 맴도는 목소리는 버드맨의 잔영이자, 리건의 분신이다. 그것은 리건이 완전하게 리건으로서 분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리건은 아내와 이혼을 했고, 그의 딸 샘(에마 스톤)은 약물중독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샘과의 관계 또한 원만하지 못하다.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리건이 화려했던 과거로부터 격리되는 것을 방해한다. 버드맨 수트를 벗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버드맨 4’를 찍거나 토크쇼에 나가고 싶은 욕망도 두드러진다.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배태된 버드맨의 목소리를 부정하던 리건은 그 목소리에 조금씩 반응하고, 그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리건은 샘과 진실게임을 벌이게 된다. 리건은 딸과의 진실게임에서 자신이 부정하고 외면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리건은 예술이 아닌, 자기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연극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의 진실게임의 패자는 리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건의 환부를 낱낱이 파헤친 샘 역시 진실게임의 허무한 결말 앞에서 아버지를 밀어내고 부정해 왔던 자기자신의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타인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오해를 풀고 감동을 느끼는 게 진실게임의 요체임을 감안한다면, 리건이 처한 상황과 의지를 폄훼하는 샘은 진실게임의 암묵적 룰을 위반한 것인데, 샘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없다. 사실이 현실로서 구현된 사태(事態)라면, 진실은 그 사태의 구현을 위해 동원된 감정과 육체의 도정이다. 두 사람은 진실게임을 통해 사실 관계의 여부만 확인하려고 하지, 그 사실 너머의 진짜진실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 리건이 찾아낸 대마초도 샘의 영역에서 발견된 하나의 사실이지, 그것이 샘의 모든 것은 아니다.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또한 <버드맨>의 진실게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마이크는 대본의 거추장스러운 형식이나 지루한 의미 반복을 걷어내고 싶어 한다. 진짜 리얼한 삶을 무대에서 펼쳐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프리뷰 공연 당시 마이크는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술을 물로 바꿔치기한 리건을 질책하며, 소품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가짜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마이크는 물질과 감정 모두 그대로 무대 위에서 재현되어야 한다고 믿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배우로서의 삶에 충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무대 밖에서의 마이크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충실하지 못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대는 현실과 대척점에 있는 공간이다. 마이크는 무대 공간의 리얼리티에 병적으로 집착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의 진심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 마이크에게는 현실과 가상(무대)이 전도되기도 하는데, 자신이 추구하는 리얼리티가 작위적으로 세워진 무대 위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이크 역시 <버드맨>이 벌여놓은 진실게임의 패자인 것이다.

 

  <버드맨>의 진실게임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마이크는 샘과의 진실게임에서 언제나 거짓이 아닌 진실을 선택하면서 진실은 언제나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무대 밖에서도 마이크가 진짜, 또는 진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과 관계를 맺고 싶느냐는 샘의 질문에 마이크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그 이유를 묻는 샘에게 실제로 (성기가) 서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다. 마이크는 자신의 결핍이나 콤플렉스를 왜곡하거나 은폐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삶과 내면을 포박하고 있는 자신의 견갑들을 해체시킨다. 그러한 징후는 인터뷰 문제로 리건과 충돌하는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리건의 거짓말이긴 했지만 마이크는 리건의 불우한 유년 시절에 대해 연민하고 그를 위로하게 된다.

 

 

  한편, 리건은 자신의 분신인 버드맨과 진실게임을 벌이면서 모두가 잊어버린 퇴물 배우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킨다. 하지만 버드맨과 분리되어 리건으로 존립하고 싶은 의지를 확고히 한다. ‘나 없이는 슬프고 이기적인 그저그런 배우일 뿐이라는 버드맨의 말을 버드맨 3’의 포스터를 던져버리는 행위로써 묵살해버린다.

 

 

  <버드맨>의 진실게임이 추동하는 결과값은 성장이다.

 

  마이크와 샘은 진실게임을 통해 자신들의 위증의 페르소나를 파기하고 각각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리건도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

 

  의도치 않게 공연장 밖으로 나가게 된 리건은 자신을 기억하는 군중들과 만나게 된다. 군중들은 리건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지만 리건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리건이 보잘것없는 맨몸으로 공연장에 달려가는 것은 버드맨과의 결별을 시도하는 진짜 자기자신의 몸짓이다. 그리고 다음 날 리건은 버드맨으로서 마지막 비행을 즐기고, 스스로 버드맨과 완전히 결별한다.

 

  리건은 그 후 무대 위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증명하기에 이른다. 리건이 실제 총기를 자신에게 격발하는 것은 여러 가지 진실을 함의하고 있다. 그것은 비평가 타바사가 지운 낙인을 겨냥한 것이면서, 연극에 모든 것을 내던진 배우로서의 선언이면서, ‘난장판또는 시궁창같은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올리기 위한 구원이기도 하다. 이것은 절대 게임이 아니며 오직 진실의 몫이다. 리건은 부리()를 잃은 대신 날개를 얻는다. (Bird)야말로 리건이 버드맨이 아닌 순수한 자기자신의 모습으로서 지향해 왔던 페르소나이다.

 

  새에게도, 인간에게도 비상은 벌칙이 아니다. 삶이고 꿈이고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