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둥지를 떠난 새들은 둥지를 어떤 곳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새에게는 기억이란 게 없다. 만약 새들에게 기억이란 게 있었다면 새들은 자유롭게 허공을 날지 못했을 것이다. 새들에게 기억 대신 남겨진 것이 있다면 그건 어미가 틀었던 깃의 체온일 것이다. 그 따뜻한 감각이, 새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기억이라면 기억일 것이다.

 

 

  새 새끼들은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먹고 자란다. 둥지 안에서 아직 눈도 못 뜬 새끼들이 먹이를 물고 돌아온 어미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미의 발끝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 때문이다. 그 때 어미가 발끝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은 둥지에 얽혀있는 잔가지들이 아니라 허공의 끝자락 어디쯤이 아닐까. 자신이 더 이상 날아가도 되지 않는 허공. 그대로 나는 법을 잊고 추락해버려도 상관없는 절벽에서 어미는 다시 또 자신이 날갯짓을 해야만 하는 숙명을 깨닫는 것이다.

 

 

  ‘향숙’은 병원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막내 ‘혜연’이 사다준 간식을 먹으며 (그것도 먹어선 안 되는 호빵) 행복해 한다. 하지만 당뇨 때문에 발목 절단 수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어미새로 치자면 위태로운 허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입을 쩍쩍 벌리며 먹이를 기다리던 자식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다는 것.

 

 

  둘째 ‘금옥’이 들려주는 남편 이야기에 모두들 즐거워하지만 첫째 ‘혜영’만큼은 웃지 않는다. 이혼 후 금옥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는 ‘혜영’은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없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제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혜영이 금옥에게 날을 세우는 진짜 이유는, 자신의 결혼 실패로 인한 상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첫째와 둘째가 티격태격하면서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막내와 셋째에게까지 불똥이 튄다. ‘향숙’은 오랜만에 만난 딸들이 다투는 게 맘에 들지 않지만 그녀에게 낯선 풍경은 아닌 듯하다. 서로를 물고 뜯던 실랑이 소리가 잦아들고 병실 안은 침묵이 감돈다. 그리고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풍경과 섞이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철택’이다. 철택은 한평생 자신의 아내 ‘향숙’을 핍박해온,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장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셋째 ‘금희’의 아침을 차려주고, 그리고 딸을 위해 생선 고깃살을 발라주는 살뜰한 모습도 있다. 아내의 병문안에 가기 전 짧아서 빗을 필요가 없는 머리를 손질하기도 하고 (다시 손으로 헝클어버리긴 하지만) 병실에 와서 아내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는, 이른바 ‘츤데레’다. 딸들의 대화에 끼어들진 않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은근히 웃기도 하고, 딸들과 손주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둔 점퍼를 개키기도 한다.

 

  철택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향숙도 그랬을까?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당신 때문에라도 더 견디고 싶어져요.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가 있어서 다행인 적이 있었을까.

 

 

  딸들이 비를 핑계로 가봐야겠다고 하자 ‘향숙’은 아쉬워한다. 가장 늦게 병실을 나온 사람은 ‘철택’이다. 철택이 아내에게 무엇인가를 건네는데, 검은 비닐봉투에 담겨 있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고추장과 김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내를 위한 마음이 담겨 있으리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혜영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금옥이 돈봉투를 건네지만 철택은 한사코 받지 않는다. 철택이 풍족해서 딸이 준 용돈을 받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아직은 더 주고 싶은 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미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동안, 그리고 새 새끼들이 어미새를 기다리는 동안, 밤낮으로 둥지를 지켜온 건 아비새니까. 새 새끼들이 기억하는 것은 어미새의 체온이지만, 그들은 분명 아비새의 그늘 아래에서 자랐으니까.

 

 

  혜영도, 금옥도, 그리고 금희와 혜연도 각자 견디고 사는 무게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갖고 있다. 새의 기억이 어미의 체온이 전부라면, 인간의 기억은 그 체온이 시작점이다. 그 체온으로부터 많은 기억들이 소환되고 재생된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 절벽 끝까지 내몰려 어둠과 추위와 두려움에 떨게 될 때, 자신의 기억의 근원, 그 따뜻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