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이별의 그늘(윤상)

노래2019. 2. 18. 13:32

 

 

문득 돌아보면,

 돌아보면 있다.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내가 있다. 다시는 임용고시 따위는 보지 않을 거라고 누간가의 어깨를 붙잡고 울던 내가 있다. 그 때 그는 내게 그랬다. 이렇게 울 거면 다시 해. 그러나 나는 그 뒤로 임용고시를 치르지 않았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돌아보면 아직도 나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있다. 몇 번이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스스로 허무는 나를 돌아보는 내가 있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럴 거면 다시 써. 그러나 나는 어떤 시도 쉽게 완성하지 못했다. 

 몇 년 전 어렵게 시를 완성해온 한 아이에게 이렇게 쓸 거면 쓰지 마,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주아주 나중에 그 아이가 한 시간 가까이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늦게서야 돌아보니 아직도 울고 있는 그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 다가와 왜 아직 울고 있는 거냐고 되묻는다. 아, 울고 있는 건 나였구나.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번지다 만 그늘처럼. 그 그늘에서 시간은 고이고 늘 같은 자리에 서있으면서 난 아주 먼 길을 떠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으며 또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서 있다. 아버지는 돌아보는 일에도 서툴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찌른 채지만 나머지 한 손은 만질 것도, 따로 둘 데도 없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는 주로 마당가에 서 있다. 아버지는 내가 오는 기척을 느끼지만 바로 돌아보지는 않는다. 마치 다른 중요한 볼 일이 있는 것처럼, 마침 삭정이처럼 비어져 나온 손으로 허방을 더듬는다. 아주 먼 길을 떠나온 사람처럼,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만날 수 없었지, 한번 어긋난 후,

 

 어떤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만나게 해드릴게요. 한번쯤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아이들은 여럿 있었지만, 나만의 의지만으로, 나 혼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움직여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만날 필요가 있을까. 물론 그 아이는 내게 선의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 아이가 나와 만나게 해줄 수 있는 또다른 무리들은 나와 무척 다정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나, 마치 이미 어긋나버린 사이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다시 만나기 위해선 누군가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만 시간이 흐른 것뿐인데도 말이다.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는 먼 그대,

 

 뇌에는 감정과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뇌가 각각 따로 있다고 한다. 전자의 주체는 해마와 편도체이고 후자의 주체는 전두전야이다. 이 두 개의 뇌는 상황에 따라서 주종관계가 뒤바뀌는데, 해마와 편도체의 작용이 활발해지면 사람은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 채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전두전야의 작용이 활발해지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이성적 평가를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는 먼 그대’가 있다고 하자. ‘나’는 얼핏 해마와 편도체의 작용에 압도당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별이 슬프고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사실 전두전야가 주도적으로 작동하여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객관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사실을 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슬픔이나 안타까움의 정서가 깔려 있지만, ‘나’는 그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되도록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더 객관적으로 위치시켜 ‘먼 그대’라고 인식하고 있다. 


 더 오래 살아 있길 바란다. 더 멀리 떨어진 채로. 영영 객관적인 기억 속에서.   

 

 난 끝내 익숙해지겠지, 그저 쉽게 잊고 사는걸

 

 그러나 끝내는 익숙해진다. 먼 산까지 아지랑이 기어오르는 봄날부터, 눈의 결정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는 겨울날까지, 시간이 시간을 부르고, 시간이 시간을 잊고, 다시 시간이 시간으로 되살아나는 동안, 나도 서성거리다가 떠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잊고, 몰래 울고 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시를 잊고,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던 사람을 잊는다. 아버지를 잊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까지 잊는다. 내가 아주 오래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듯이, 우왕좌왕, 허둥지둥, 아등바등했던 모든 몸짓을 잊는다.  
  


  또 함께 나눈 모든 것도 그만큼의 허전함일 뿐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만남을 준비할까

 하지만 기억해줘,

 지난 얘기와 이별 후에 비로소 눈뜬 나의 사랑을

 
 

 나는 안개를 이해하지 못했다, 라고 시작하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시골마을에는 아침안개가 늘 자욱했다. 안개 속을 눈이 먼 것처럼 더듬더듬 걸어가곤 했다. 느릿느릿. ‘더듬더듬’과 ‘느릿느릿’은 그 때의 내 속도였다. 짙은 안개가 걷히고 나는 눈을 떴다. 안개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을 안개를 이해한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허둥지둥했다. 아등바등 사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안개는 아직도 등 뒤에서 일렁였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돌아보면, 내가 아직 같은 자리에 있을까봐 두려웠다. 그 아이가 울고 있고, 아버지가 아직 서성거리고 있고, 아무도 용서하지 못한 채로,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한 채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일까봐 돌아볼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었고, 눈앞에 분명 누군가 있었는데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가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얼굴을 만지며 이렇게 말한다.

 

 왜 아직도 울고 있느냐고.

 

 나는 아무하고도 헤어지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