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AS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널메시나 이니에스타,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축구를 시작한 이래로 팀을 한 번도 옮기지 않은 원클럽맨, 팀과 '나'가 하나되는 팀아일체의 표본이다.

 

   나는 여자에게는 무수히 거짓말을 해왔지만 로마에게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말은 토티의 말이다. 로마의 왕자, 토티가 AS로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클럽맨은 선수인 '나'의 겸양이나 (구단과의 계약 관계에서의) 양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팀에 충성심이 높은 선수라도, 기량이 눈에 띄게 저하돼 더이상 팀에 보탬이 되지 않는 선수를 데리고 있을 팀은 없다. 원클럽맨은 절대적인 기량과 팀에 대한 애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클럽맨이라는 용어는 축구계에서 빈번히 사용돼 왔다. 위에 언급한 인물 말고도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축구스타들이 자신의 단 하나의 팀을 떠나는 걸 원치 않았다. 더 좋은 조건, 훨씬 더 많은 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프로야구 FA시장이 더욱 과열되면서 우리나라 야구에서는 더이상 '원클럽맨'을 찾기가 어렵다. 이종범 선수(기아타이거즈 은퇴)나 이승엽 선수(삼성라이온스 은퇴)나 김태균 선수(한화이글스) 같은 이름이 떠오르지만 그들은 모두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가 다시 원래의 팀으로 복귀한 사례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원클럽맨'이라고 칭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안다. 이들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들을 모두 원클럽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 강민호 선수가 두 번째 FA를 통해 팀을 옮겼다. (롯데자이언츠 → 삼성라이온스) 자이언츠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팀 팬들조차 강민호 선수의 이적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롯데의 강민호!'가 아니던가. 부산을 사랑했고, 자이언츠라는 팀에 충성을 다했고 팬들에게도 늘 고마워했던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커뮤니티 사이트의 중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강민호 선수 FA 계약을 대하는 구단의 태도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돈'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다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구단의 태도라는 것에는 '돈'이 빠질 수 없는 문제니까. 어쨌든 자이언츠는 구단의 역사에, 팬들의 마음속에 길이 남을 '원클럽맨'을 잃게 되었다.

 

  제가 소설을 쓰는 첫번째 이유가 돈인 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첫번째, 두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계속 싸워서 글과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써서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겠습니다.

-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문학동네) 서문

 

  프로선수의 가치는 금액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돈'이 프로선수가 지향하는 모든 것은 아니다. 강민호 선수가 야구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가 그동안 야구에 대해, 롯데자이언츠에 대해, 그리고 팬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오고 행동해왔던 것을 보면,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나 '세 번째'에 가깝다. 그러나 장강명 작가의 말처럼 두 번째나 세 번째라고 해서 강민호 선수에게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프로선수의 가치는 금액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도 중요할 것이다. 그 과정은 구단과 강민호 선수만이 아는 것이다. 어쩌면 강민호 선수 혼자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일을 함께 겪고서도 그 과정에 대한 기억의 결과값이 서로 다른 일이 얼마든지 많으니까.   

 

   작년 양현종은 기아타이거즈와 22억 5천만원 단년 계약을 맺었다. 물론 큰 돈이지만 양현종 선수가 지닌 실력과 가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계약이었다. 무엇보다 기량이 떨어져 팀 공헌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노장 선수를 제외한다면, FA 기회를 단년 계약으로 '날려버릴' 선수는 없다. 바보같은 계약이었다. 그러나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양현종이기 때문이다. 기아타이거즈라는 팀밖에 생각해보지 않은 양현종이기 때문이다. 양현종이 일 년 뒤 더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구단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원클럽맨' 탄생에 기여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단 기아타이거즈라는 팀밖에 생각해보지 않은 양현종의 충성심, 그리고 여전히 양현종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단, 보너스로 일 년 뒤에 더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구단의 태도(돈과 신뢰의 문제) 등이다.

 

 양현종 선수는 올해 20승을 올리며 그의 존재 가치를 더욱 확고히 했다. 이제 구단이 일 년 전 약속한 신뢰를 보여줄 시기이다. 기사대로라면 구단 측에서 계약 내용을 제시했고, 양현종 선수의 응답을 기다리는 단계라고 한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그 응답만을 기다리면 안 된다. 가만히 앉아서 양현종 선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자칫 다시 한번 그에게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게 될 수가 있다. 응답을 기다리지 말고 응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게 구단이 일 년 전의 약속을 이행하는 방법이다. 양현종은 이미 여러 차례 원클럽맨을 향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선수의 충성심과 애정에 대해 구단을 현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구단의 태도로 인해 양현종의 '원클럽맨' 의지가 결렬될 때, 팬들은 구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부디 아무것도 안심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