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야구장 가서 야구를 관람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일을 나가지 않는 일요일이 그나마 야구장 가기 적합한 날이지만(일, 월 이틀 쉬지만 슬프게도 월요일은 야구 경기가 없다.) 일요일에 홈경기가 아니고선 ‘직관’은 어렵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운 좋으면 네 번까지 홈경기가 잡혀 있다. 그런데 아내 눈치 보느라 야구장 간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아내의 지론대로라면 일요일과 월요일은 내게 휴일이 아니라,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날이다. 네 살배기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것, 끼니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것, 욕실을 청소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 등등 내가 쉬는 날 할 일은 은근히 많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다 내팽개치고 나, 야구장 갔다 올게,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른바 와이프 시프트다.

 

  야구장에 한번 가기 위해선 일단 미리서 모월 모일 야구장에 가겠노라고 선언해두어야 한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런 건 아내가 잘 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구장에 가는 시점에 맞춰 아내 눈에 거슬리는 집안 풍경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욕실은 깨끗한 상태여야 하고, 주방은 나 없이도 아이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청결해야 하며, 분리수거함에 재활용 쓰레기들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의 ‘기분’이 좋아야 한다.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집안이 반짝반짝 빛난다 하더라도 야구장 외출은 허락되지 않는다.

 

  허락,

  아내는 허락에 대한 표현은 분명히 한다. 응, 그렇게 해. 뭐 싸줄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굳이 가지 마, 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 날 선발로 나선 투수가 다음다음날 계투로 마운드에 오를 때의 그 번뇌 가득한 표정으로 알아서 해, 라고 말한다. 그래, 나는 알아서 가지 않는다. 야구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랑 노는 것도 기뻐, 라는 표정을 기꺼이 지어 보이며 쉽게 포기한다.

 

  와이프의 시프트는 이처럼 단순하다. 말은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표정은 그게 아니다. 나는 그 단순한 시프트에 걸려들지 않는다. 말, 워딩보다는 표정에 주목한다. 수준급 포수는 투수와 주고받은 사인대로 오지 않는 공에 대해서도 예상하고 미트를 준비한다. 그래야 폭투가 나오지 않는다. 폭투라는 말은 던지는 자, 그러니까 투수가 범한 과오의 의미가 강하지만, 그걸 받지 못한 포수에게도 그만큼의 과실이 있다. 포수가 받아 공을 빠뜨리지 않으면 주자가 있더라도 진루나 득점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와이프의 표정(sign)에는 기만의 의도가 없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폭투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순순하게 아내의 표정에 담긴 뜻을 잘 받아주면 된다. 아무에게도 과오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직관을 위해선 2, 3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되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