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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일목 선수가 2017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팀은 한화이글스였다. 그는 2차 드래프트로 팀을 옮긴 후(기아타이거즈 → 한화이글스) 전적 팀에서보다 훨씬 안정적인 위치에서 포수 포지션을 소화했다. 안정적인 리드와 수비 실력에도 불구하고 차일목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수비 능력에 비해 공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포수 포지션이 취약한 기아타이거즈에서 김상훈 선수와 함께 분투해준 선수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야구선수로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199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 지명을 받았을 때일까? 아니면 2009년, 기아타이거즈에서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했을 때일까? 아니면 2015년 시즌 후,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이글스의 지명을 받았을 때일까? 그것도 아니면 2011년 SK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엄정욱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쏘아올릴 때였을까.

 

  모두가 다 찬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프로선수로서 지명됐을 때는 야구를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009년 처음으로 우승을 경험했을 때는 그 생각이 더 분명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매순간, 부침 없이, 기쁠 수만은 없다.

 

  차일목은 2014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FA 계약은 야구선수라면 당연히 품게 되는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차일목은 구단과 원만한 협상을 하지 못하고 시장에 나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차일목은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여기서 자존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로 선수의 자존심이라는 것은 기실 실력과 그로 인한 위상에 근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단과 협상에 임하는 선수 개인의 자존심이 선수로서 쌓아올린 스탯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인간적 자존심이다. 구단에서는 협상이 결렬된 뒤 차일목에게 얼마든지 다른 팀을 알아보고 조건에 맞으면 계약하고, 맞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다른 팀과 협상을 진행해도 소위 ‘괘씸죄’를 묻지 않겠다는 뉘앙스였는데, 차일목에게 그 말은 구단에 자신이 그렇게까지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은 포수 차일목에 대한 부정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로 홈플레이트를 지켜오지 않았는가.

 

  차일목은 야구를 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이군을 전전하면서도 자신이 야구선수로서의 삶을 택한 걸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었던 그였기에 그 후회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차일목은 2년 총액 4억 5천만원에 기아타이거즈와 FA계약을 맺었다. 차일목은 자신을 강민호 선수 같은 일류 포수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프로라는 세계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2011년 9월 18일, 후반기 투․타의 이례 없는 침체 속에 타이거즈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아직 2위를 포기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11회말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차일목이었다. 대다수 팬들은 타석에 들어선 선수가 차일목이라는 사실에 낙담했다. 덕아웃에서도 12회초 마운드에 올라올 투수에 대해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차일목이 트윈스의 신성 임찬규 선수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그것도 끝내기홈런이었다.

 

  차일목은 그 때와 같은 환희가 한 번쯤 다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차일목은 2015 시즌 후,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팀을 옮기게 되었다. 이미 타이거즈는 백용환과 이홍구 선수, 두 명의 포수로 2016 시즌을 구상하고 있던 터였다. 더 이상 타이거즈 배터리에 차일목 선수의 지분은 없었던 것이다. 차일목은 자신에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균의 수비력과 안정적인 투수리드’가 장점인 자신에게 그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포수진이 약한 편이었던 한화이글스에서 다시 한번 시작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2016 시즌, 차일목은 한화의 새로운 포수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누군가는 조인성 선수와 정범모 선수의 부진을 틈타 차일목이 무주공산을 점령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차일목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투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배터리의 조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한 선수다. 비록 2017 시즌은 부상과 그 여파로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그의 노력 덕분에 2018 시즌, 한화이글스의 새로운 코치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이렇게 질문한다. 차일목, 그에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야구’를 했고, ‘야구’를 하고 있고, ‘야구’를 하게 될 모든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