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2018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신종길. 그가 이글스에 속해 있던 2008년, 자신의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면서 타이거즈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는 꽤나 유명해진 일화다. 팀이 위대해지는 순간이다. 팀이 선수에게 주는 것은 소속감만이 아니다. 팀은 팀의 분위기와 문화, 팀이 누려온 영광이나 팀이 지향하는 비전까지 팀컬러의 모든 것을 선수에게 부여한다. 그래서 팀을 옮기는 것이 언제나 자연스러운 건 아니다. 양준혁은 해태타이거즈로의 이적을 거부한 일이 있었고, 현재 히어로즈의 감독인 손혁도 해태타이거즈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 적이 있다. 손혁은 그 일로 다소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게 됐다. 공교롭게도 양준혁과 손혁이 거부한 팀이 타이거즈였다. 당시만 해도 영·호남 팀간의 트레이드는 무척이나 낯선 풍경이었다. 팀간의 정서도 그랬고, 선수들끼리의 적대의식도 강했다. 양준혁도 타이거즈에 갈 바에야 마이너리그에서 뛰겠다고 할 정도였다. 정치적 타산에 의해 성립된 대립이 스포츠를 통해 더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의 정치성은 그라운드에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스포츠의 정치성은 유니폼의 배면에 스며들어 있다. 유니폼은 팀이면서 팀 이상의 것이 함의돼 있다. 그래서 유니폼을 바꿔 입는 것이 언제나 수월한 일은 아니다. 선수에게도 그렇지만 팬들에게도 응원팀의 소속 선수가 다른 유니폼을 입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낯설고 어렵다.

   타이거즈 소속이던 안치홍이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안치홍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팀이 자신을 붙잡는 데 공을 들이지 않을 것을. 구단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선수 측에서 자이언츠와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안치홍은 자이언츠와 2+2년 최대 56억에 계약을 체결했다. 안치홍을 놓친 건 구단의 패착이 분명하다. 시장의 흐름을 잘못 읽은 것이다. 과열된 FA시장의 거품이 꺼져가는 것을 구단이 마치 협상의 모든 키를 쥐고 있는 것처럼 오해한 것이다. 시장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잡아야 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공을 들여야 하는데, 구단은 너무 느긋했고 선수는 팀을 떠났다.

(각 구단이 단장을 선임하는 방식도 사실 코미디에 가깝다. 스포츠행정이나 스포츠경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팀의 경영을 맡긴다. A팀이 젊은 사람에게 단장을 맡기니 B팀도, C팀도,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에게 단장을 맡긴다. 선수출신이면 누구나 단장이 될 수 있다. 단장이 되는 데 특별한 자격은 없다. KBO는 상당히 폐쇄적인 집단이고, 그 집단 내에서만 활발하게 교류된다. 기이한 유행이 확산된다. 잘못된 경영문화를 비추어볼 거울이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절대로 타이거즈의 유니폼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선수가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는 일도 종종 있다. 2020 시즌의 류지혁이다. 그도 베어스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이 남달랐던 선수다.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고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 만감 중 99.9의 감정은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가 박건우와 포응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고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60959)

 

  5년의 시간을 백업에 머물렀던 팀이지만, 그 팀은 류지혁에게 주전으로서의 꿈을 심어준 팀이다. 팀은 늘 정상이었다. 그런 팀의 백업이라서 자부심도 강했을 것이다. 팀은 그에게 자부심을 주었고, 류지혁은 그 자부심만큼 성장하고 싶었다. 좌절한 순간도 있었겠지만 간절한 사람들에게는 그 좌절마저도 꿈이다.

 

  베어스의 유니폼 외에는 어떤 유니폼도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그였지만,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혀 놓으니 제법 타이거즈의 느낌이 난다. 이제 류지혁의 팀은 베어스가 아닌 타이거즈다. 이적해 오자마자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안타깝게도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최소 2주 정도의 공백이 있을 것이다. 팀은 그의 공백기를 어떻게든 버티면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 팀은 선수보다 위대하지만, 그 위대한 팀이란 결국 선수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류지혁이 건강하게 복귀할 때까지 팀은 위대하지 않은 채로 그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