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패터슨]은 패터슨에서 벌어지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이야기다. - 나도 해리에서 벌어지는 ‘해리’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 그러나 [패터슨]에서는 어떤 '벌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이 미미하다.

  영화가 얼마나 잔잔하게 흘러가느냐면 버스회사 동료 도니가 겪고 있는 가정사가, 그가 늘어놓는 푸념이 영화에서 도드라져 보일 정도이다. 패터슨이 자주 가는 바에서 에버렛이라는 남자가 변심한 애인 마리 때문에 가짜 총으로 자살소동을 벌이는 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상업적인(?) 씬이다.

  패터슨이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와 함께 사는 집은 요동치는 삶으로부터 한발 비껴서 있는 것 같지만, 정말 패터슨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패터슨은 시를 쓴다. - 그것만으로 얼마나 무지막지한 사건인가? - 아침 일찍 일어나 잠든 로라에게 입맞추고, 로라의 꿈 이야기를 듣는다. 혼자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운행을 나가기 전까지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끼적인다. 패터슨의 시는 그의 쓰는 행위로 소환되었다가 내레이션으로 전사된다. 그의 일과는 시와 함께 흐른다. 너무나 평온하게. 그게 패터슨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라고 말했지만 화요일이나 수요일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시간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다.)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패터슨이 집에 돌아왔는데, 집 앞, 우편함 기둥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패터슨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바로세운다.

  [패터슨]은 '균형'과 '불균형(기울어짐)'의 사이에 있는 이야기다.

  패터슨의 드러나지 않은 고민과 갈등은 그의 시 속에서 정제되고 질서를 갖추게 된다. 파문이 이는 물 위에 있지만, 그 중심에는 시심이라는 깊이가 있어 흔들림은 최소화되고 심지어는 무화된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 않은.

 

 

  컨트리가수를 꿈꾸는 로라가 몇백 달러를 호가하는 기타를 구매한다고 했을 때 패터슨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망설임이 어린다. 그러나 이내 로라의 뜻을 존중해준다. 로라가 집 내부를 단장하는 동안 조금씩 바뀌는 집안의 분위기와 패터슨의 얼굴이 교차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물리적으로 일어난 변화들로부터 패터슨은 침잠해 들어가길 원한다. (패터슨이 시를 쓰기 위해 지하방으로 가는 것을 보면, 가장 균형 잡힌 것처럼 보이는 삶의 형태가 어쩌면 가장 불균형해 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로 우편함 기둥이 기울어졌을 때, 패터슨은 화를 내는 것 같다. 그런데 화를 내는 대상이 꼭 패터슨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 패터슨이 아닌, 시를 쓰는 패터슨을 향한 분노이다. 그 순간 패터슨의 심정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더 이상의 평정은 어려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우편함 기둥을 다시 바르게 세운다. (우편함 기둥을 기울게 한 범인이 패터슨 부부가 기르는 애완견 '마빈'이었다는 것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패터슨이 갖고 있는 시에 대한 결벽을 나도 예전에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밤을 새워 다듬은 시를 가지고 우체국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던 기억은 여전히 불구의 몸으로 찾아와 시를 쓰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곤 또 우는 얼굴로 제발 시를 써달라고 애원한다.

  패터슨이 복사본을 만들어두라는 로라의 말을 듣고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자신의 시를 스스로 시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그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에게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로라가 패터슨에게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 어렵다.

  로라와 함께 저녁을 먹고 돌아온 후, 패터슨은 마빈이 찢어놓은 자신의 비밀노트를 보며 절망에 빠진다. 로라 또한 마빈을 저주하며 집 밖으로 내쫓아버린다. 그 순간 패터슨이나 로라보다 더 절망한 건 나였다. 노트에 쓰인 시들을 절대로 다시 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동요도 없는 지극히 평온한 삶을 얻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홀로 앉아 있는 벤치는 왠지 잔뜩 기울어져 보였다. 더치앵글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벤치 끝에서 엄청난 기울기를 견디고 있는 패터슨의 뒷모습을, 나 역시 아슬아슬하게 견뎠다.

 

  그 때 한쪽으로 기울어진 프레임의 반대쪽을 디디며 들어오는 한 일본인 남자(나가세 마사토시)가 있다. 그 남자가 패터슨에게 건넨 것은 노트이다. 남자는 노트를 건네고 홀연히 사라지지만, 패터슨은 어느새 삶의 균형을 되찾는다. 시로 인해 또다시 불균형의 세계를 만나겠지만, 그 때의 기울어짐은 한쪽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다른 한쪽에서도 역시 새로운 균형을 향해, 그리고 다시 어떤 기울어짐을 향해 끝없이 몸을 흔드는 무게가 있는 것이다.

 

  * 아담 드라이버를 비롯한 배우들은 카메라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연기를 소화한 느낌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디렉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프레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천국보다 낯선]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뭐, 그냥 느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