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야구장 가서 야구를 관람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일을 나가지 않는 일요일이 그나마 야구장 가기 적합한 날이지만(일, 월 이틀 쉬지만 슬프게도 월요일은 야구 경기가 없다.) 일요일에 홈경기가 아니고선 ‘직관’은 어렵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운 좋으면 네 번까지 홈경기가 잡혀 있다. 그런데 아내 눈치 보느라 야구장 간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아내의 지론대로라면 일요일과 월요일은 내게 휴일이 아니라,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날이다. 네 살배기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것, 끼니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것, 욕실을 청소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 등등 내가 쉬는 날 할 일은 은근히 많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다 내팽개치고 나, 야구장 갔다 올게,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른바 와이프 시프트다.

 

  야구장에 한번 가기 위해선 일단 미리서 모월 모일 야구장에 가겠노라고 선언해두어야 한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런 건 아내가 잘 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구장에 가는 시점에 맞춰 아내 눈에 거슬리는 집안 풍경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욕실은 깨끗한 상태여야 하고, 주방은 나 없이도 아이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청결해야 하며, 분리수거함에 재활용 쓰레기들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의 ‘기분’이 좋아야 한다.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집안이 반짝반짝 빛난다 하더라도 야구장 외출은 허락되지 않는다.

 

  허락,

  아내는 허락에 대한 표현은 분명히 한다. 응, 그렇게 해. 뭐 싸줄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굳이 가지 마, 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 날 선발로 나선 투수가 다음다음날 계투로 마운드에 오를 때의 그 번뇌 가득한 표정으로 알아서 해, 라고 말한다. 그래, 나는 알아서 가지 않는다. 야구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랑 노는 것도 기뻐, 라는 표정을 기꺼이 지어 보이며 쉽게 포기한다.

 

  와이프의 시프트는 이처럼 단순하다. 말은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표정은 그게 아니다. 나는 그 단순한 시프트에 걸려들지 않는다. 말, 워딩보다는 표정에 주목한다. 수준급 포수는 투수와 주고받은 사인대로 오지 않는 공에 대해서도 예상하고 미트를 준비한다. 그래야 폭투가 나오지 않는다. 폭투라는 말은 던지는 자, 그러니까 투수가 범한 과오의 의미가 강하지만, 그걸 받지 못한 포수에게도 그만큼의 과실이 있다. 포수가 받아 공을 빠뜨리지 않으면 주자가 있더라도 진루나 득점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와이프의 표정(sign)에는 기만의 의도가 없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폭투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순순하게 아내의 표정에 담긴 뜻을 잘 받아주면 된다. 아무에게도 과오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직관을 위해선 2, 3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되는 것뿐.

  한화이글스의 신성현 선수는 정든 팀을 떠나는 게 어려웠다. 동료들에게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양원더스에서부터 자신을 지켜봐준 김성근 감독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했다. 한번도 타이거즈의 일원인 적이 없고 다만 상대팀 선수로만 봐왔던 선수지만, 그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안타까웠다.

 

  노수광 선수도 김기태 감독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울먹거렸다. 타이거즈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성장한 팀에 남아 자신의 이름을 팬들의 마음속에 더 강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꿈이 있었다.

  이홍구 선수는 트레이드된 이후, 어느 기자에게 기아는요? 라며 타이거즈 경기 결과를 묻기도 했다. 옷을 갈아입고도 아직 마음까지는 완전히 이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이 4:4 트레이드 이후, SK도 잘 나가고 기아도 잘 나간다는 것이다. 이홍구 선수는 팀의 연승 과정에서 결승타를 때려내기도 하고 홈런 세 개를 몰아치면서 팀 승리에 기여하였다. 노수광 선수도 이적 이후 몇 경기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잠깐의 부침을 겪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노수광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충격적인 이별이었을 테지만, 노수광 선수도 그렇고 이홍구 선수도 그렇고 팀에 잘 적응하고 있다. 신성현 선수도 그럴 것이다. 신성현은 어제 삼성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 11회말 대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안타 하나면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타석에서 많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산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들어서는 타석에서 자신을 선택해준 팀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신성현이 받아친 공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에 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김헌곤 선수가 빠르게 달려와 미끄러지며 그 공을 받아냈다. 아쉬운 플라이볼이 되었다. 신성현 선수의 허탈한 표정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신성현 선수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잘했어.

 

  동료들은 그렇게 위로해줬을 것이다. 이제 막 팀을 옮겨온 그의 마음을 모르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잘했어, 어깨를 토닥거리며 하는 말이, 잘 왔어, 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팀을 옮겨온 선수만 이별을 경험한 게 아니라, 그를 맞이하는 선수들도 그 날 이별을 경험한 당사자들이다. 그들은 떠나보낸 최재훈 선수를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보다는, 새롭게 만나게 된 신성현 선수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주었을 것이다.

 

  마냥 슬퍼하고 안타까워만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어제도 롯데자이언츠와 KT위즈 간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다. 오태곤 선수와 장시환 선수에게 초점이 맞춰진 트레이드였다. 오태곤 선수가 펑펑 울었다는 말을 듣고 또 가슴이 아파졌다.

 

  하지만 하룻동안 그는 평정을 되찾았을 것이다. 노수광이 그랬듯, 이홍구가 그랬듯, 김민식과 이명기가 그랬듯. 그리고 신성현 선수와 최재훈 선수가 그랬듯이.

 

  웃으면서 오늘의 경기를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타이거즈를 지켜줘!!

 

 

  전문가들은 기아타이거즈가 두산베어스의 독주를 막을 대항마라고 점찍었다. 팬들 역시 기대를 모았다. 최형우 선수가 영입되었고, 양현종, 나지완 선수가 잔류했다. 새로운 외인, 팻딘과 버나디나 선수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무엇보다 김선빈, 안치홍 선수가 군 제대 후 풀타임을 치르는 해였다.

  김주찬, 이범호, 서동욱, 김주형 선수에 노수광 선수까지, 2016년 좋은 기억을 준 선수들이 대기하는 타선을 보고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수없이 노출된 불안요소가 있었다. 기대대로 양현종, 헥터, 팻딘 선수까지 3선발은 문제가 없었으나, 4, 5선발과 불펜이 문제였다. 4, 5선발로 기대를 받았던 홍건희, 김윤동 선수는 4월 2일 삼성라이온스 전에서 무너졌다. (임기영이 4월 6일 SK와이번즈 전에서 호투를 펼친 건 다행이었으나 오늘 4월 12일 두산베어스 전에서 다시 한번 검증이 필요하다.)

 

  홍건희 선수는 4월 11일 두산베어스 전에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팬들을 더 좌절시킨 건 선수의 부진보다 코칭스태프의 투수진 운용이었다.

  홍건희 선수가 3실점을 한 뒤 타선은 2득점을 올렸다. 이 날 경기를 잡기 위해선 김윤동 선수가 조기 투입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홍건희 선수는 3회에도 그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결국 주자 2명을 남기고 교체되었다. (경기를 잡기 위해선) 교체 시점이 늦은 감이 있었지만 주자 2명을 막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홍건희 선수를 대신하여 마운드에 오른 건 김윤동 선수가 아니라, 김광수 선수였다. 4월 2일 삼성라이온스 전부터 전혀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김광수 선수를, 중요한 순간에 투입한 것이다. 경기는 초반이었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이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것을. 이런 생각도 들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기를 만들어서 패전조와 백업요원들을 투입시키려는 건가. 이런 패턴으로 팬들을 허무하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4점을 더 내줬지만 곧바로 2점을 만회하였다. 4:7. 따라붙기 어려운 점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김광수 선수 다음에 올라온 선수는 박진태 선수였다. 박진태 선수는 타이거즈가 더 성장시켜야 할 선수지만, 이 상황에서는 아니었다. 많은 팬들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인내를 이 순간 버렸다.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이라면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4:7이었고, 아직 4회였다. 승패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승부의 흐름을 너무나 알기 쉽게 바꿔놓았다. 이를 악물고 쫓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박진태 선수 대신 김윤동 선수가 올라왔다 해도 어차피 1+1 전략으로 두산베어스 타선을 상대할 계획이었으면 적어도 8회까지는 비등하게 경기를 이끌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렸어야 했다. 그러나 코칭스태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의 생각인지, 이대진 코치의 생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어제 경기 상황만 보면 기아타이거즈의 가장 큰 문제는 4, 5선발이나 불펜이 아닐지도 모른다.

 

  뒤늦게 나온 김윤동 선수와 박지훈 선수는 한 이닝씩을 맡았다. 허무한 소모였다. 어떤 의도로 등판시킨 건지 알 수 없었다. 선수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등판 시점과 상황이 두 선수에게 어떤 동기와 의미를 부여할는지 알 수 없다.

 

  노수광 선수가 타이거즈를 떠났고, 김민식 선수가 타이거즈로 왔다. 어제 경기에 선발로 나선 한승택 선수보다는 중량감과 안정감 면에서 돋보였다. 포수진도 약점이라면 약점이었다. 

 김진우 선수가 2군 경기에 등판해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4, 5선발이 확정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임기영 선수의 호투를 기대한다.) 불펜진도 재정비되어야 한다. 임창용 선수에게 당분간 클로저 역할을 맡기지 않을 것 같지만, 다른 복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들보다 어제와 같은 경기 운용이 더 큰 문제다. 기회가 필요한 선수에게는 기회가 주어져야겠지만, 준비된 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준비가 필요한 자들에게는 더 준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길.   

20170407 노수광

야구2017. 4. 7. 12:09

 

  ‘우리’ 노수광 선수가 떠났다. (야구가 뭐라고) 아침부터 슬퍼진다. 노수광 선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노수광 선수가 아니었다면 김민식 선수와 같은,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를 얻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냉정하게,

 

  비정(非情)이란 말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로는 비정한 세계라고 하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는 감탄구토나 토사구팽의 논리로 볼 수 없다. 오늘의 일이, 비정한 세계라고 비유되는 프로에서 종종 일어나는 ‘비정한 사건’은 아니다.

 

 

  포수는 우리 팀의 취약 포지션이었다. 성장 가능성을 보였던 백용환 선수와 이홍구 선수가 타격과 수비에서 고만고만한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두 사람을 대신하여 이용규 선수의 보상으로 건너온 한승택 선수에게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아졌다. (부상으로 이탈 중이긴 하지만) 백용환 선수와 이홍구 선수는 올해 스프링캠프부터 좋은 모습을 보인 신범수 선수보다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이었다. 리빌딩 체제 하에서 유독 포수진만 그 속도가 더디었다.

  이번 트레이드는 포수진 리빌딩의 실패에 대한 방증이다. 결국 백용환, 이홍구 선수가 주전포수로 나서고 틈틈이 한승택 선수에게 기회를 부여해서 성장시키는 플랜은 실패한 것이다.

  코칭스태프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백용환 선수가 부상에서 복귀한다 하더라도, 작년의 부진을 얼마나 상쇄시킬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포수진의 안정화를 뒷짐지고 바라볼 수만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플랜B를 세웠을 것이다. 백용환 선수나 이홍구 선수에게 바랐던 역할을 해줄 선수를 물색하다가 SK와이번즈의 김민식 선수를 낙점하고 트레이드 카드를 조율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이미 오늘자로 배포된 기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추론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노수광 선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내민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기사문들을 읽어봐도 기아타이거즈가 트레이드 카드를 여러 번 조율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항상 성실한 모습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또 연습의 결괏값을 만들어내는 노수광 선수는 코칭스태프로부터 확실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미래의, (먼 미래도 아니다. 내년이 될 수도 있고) 외야진의 중심이 되어줄 선수였다. 그래서 노수광 선수가 트레이드 명부에 올랐다. 염경엽 단장이 노수광 선수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민식 선수처럼 요긴한 자원을(포수여서 더더욱) 내준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선수를 받아야 하므로 노수광 선수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것이고, 고민하던 코칭스태프(+구단)에서는 이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노수광 선수가 귀중한 자원이 아니어서 트레이드 보낸 것이 아니라, 노수광 선수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자원이기 때문에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김주찬 선수와 새롭게 영입한 최형우 선수와 버나디나 선수, 이 선수들만으로도 외야진은 꾸려진다. 백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안치홍 선수가 복귀하면서 자리가 애매해진 서동욱 선수도 외야로 갈 수 있고, 어쩌다 한 번씩 믿음직한(믿을 수 없는) 수비를 보여주는 나지완 선수도 외야로 갈 수도 있다. 이 외야진이 완성된 형태라고는 말할 수 없다. 김호령이나 오준혁 선수 등도 있지만 노수광 선수가 있으면 시즌을 치르면서 발생하는 변수에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노수광 선수가 백업 선수로만 있기에는 아까운 면도 있다. 타석에서 꾸준히 기회를 부여받았던 2016년 시즌, 손가락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얼마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그런 면에서 이번 트레이드는 노수광 선수에게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와이번즈의 외야진을 감안하면 노수광 선수는 당장 오늘부터라도 선발 외야수로 경기에 나설 수 있으니까.

 

 

  냉정하게.

  냉정은 비정(非情)과 다르다. 냉정은 마음속의 어떤 열기를 지우고, 그래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상태이다.

 

 

  나는 냉정하게 이런 결론을 얻었다.

 

  그래, 노수광 선수를 위해서도 잘 된 일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냉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참 어렵다. 특히나 이렇게 따뜻한 봄날에는.

 

  노수광 선수에게는 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노수광 선수를 다시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노수광 선수의 이름을 마킹해서 유니폼을 구입하려고 했었다.

  노수광 선수가 처음 우리 팀에 온 날을 기억한다. 네 명의 선수가 찍힌 사진 프레임에서 노수광 선수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느꼈다. 느낌일 뿐이지만, 이 선수는 정말 잘하겠다, 열심히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기아타이거즈는 해태타이거즈 시절 보여주었던 패기가 사라진 팀이었다. 흔히 헝그리정신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그 패기 말이다. 노수광 선수는 타이거즈가 잊고 있던 그 패기를 되살려준 선수라고 생각한다. 안타를 치고 질주하는 모습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눈물이 날 정도로. 노토바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그라운드를 질주하면 길고 길었던 타이거즈의 암흑기의 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구가 뭐라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냉정해지는 것은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성우 선수, 궂은 일 감당하며 견뎌줘서 고마워요.

  이홍구 선수도 더 발전할 거예요. 힘내요.

  윤정우 선수, 마음이 참 아프네요. 타이거즈에 다시 와서 빛을 보길 바랐는데, 더 많은 기회를 받으면서 더 좋은 선수가 되길 빌어요.

 

  사진 출처 : OSEN

 

  9회말, 삼성 공격. 스코어 7:0

 

  타이거즈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긴장감은 제로였다.

  김광수 선수가 등판해서 주자 두 명을 보내고 최경철 선수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쓰리런이었다.

 

  7:3

 

  그래도

 

 

  괜찮을 거야.

 

  김광수 선수에 이어 등장한 선수는 고효준 선수였다. 아마 김광수 선수에서 경기가 끝날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중계화면에 비치는 선수의 모습만으로 감정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김광수 선수가 원아웃 카운트만을 잡고 강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 수많은 팬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웃카운트 두 개면 끝이었다.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선보였던 고효준 선수를 믿었다. 그러나 우동균 선수에게 볼넷, 배영섭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고효준 선수마저 강판당하고 말았다.

  다음은 한승혁 선수였다. 시범경기에서 157km에 육박하는 스피드를 선보였고, 임창용 선수에 앞서 등판할 또다른 클로저로서 기대했던 한승혁 선수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마운드를 향해 걸어나왔다.

  김광수 선수에서 고효준 선수로 넘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불펜에 긴장감이 전해졌을 테고,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하고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백상원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타석에서 그다지 위협적인 선수가 아니었으므로 더욱 뼈아팠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이런 예감은 우리 모두를 빗겨가지 않는가. 구자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고 폭투가 나왔다. 3루에 있던 우동균 선수가 홈을 밟았다.

 

  7:4

 

  이제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었다. 다행히 구자욱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구자욱 선수를 삼진으로 잡은 카운트 공은 포크볼로서 상당히 위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공이었다. 주자는 2, 3. 4번타자 러프 선수를 고의사구로 걸렀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어떤 감독도 정면 승부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한승혁 선수가 한 명만 더 잡아주면 끝나는 경기였다. 그런데 투수 교체가 이뤄졌다. 임창용 선수였다.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베테랑의 관록이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야구에는 'IF'도 있을 순 없지만 ‘Never’도 없었다. 임창용 선수는 정병곤 선수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밀어내기였다.

 

  7:5.

  그리고 최영진 선수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7:7 동점이 되었다.

  첫 등판에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했던 팻딘의 승리가 허무하게,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날아가버렸다.

  경기는 연장에 돌입했고 타이거즈는 우여곡절 끝에 9:7로 이겼다.

 

  그러나 쉽게 기뻐할 수 없었다.

 

  144경기 중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그리고 팬들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경기는 몇 경기나 될까.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만큼 그라운드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우리에겐 끔찍한 일이었지만, 라이온즈 팬들에게는 환상적인 9회말이 되었다. 끝날 때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팬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꼭 타이거즈 팬들에게만 오리란 법은 없다.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경기에 대한 아쉬움은 팬들보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더할 것이다. 김광수 선수나 임창용 선수, 그리고 김기태 감독에게 비난을 퍼붓는 팬들도 있지만, 인격을 훼손시키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다. 이런 경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1승을 거두었다. 1승이 나중에 어렵게 거둔 1으로 핸디캡을 받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1승이다. 선수들도, 코칭스태프도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김기태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코칭스태프에 자기자신을 포함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장은 멈추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람은 더 발전하고 성장한다. 오늘의 경기는 성장통 정도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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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위즈에서 2년간 활약했던 마르테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가 허리 부상만 아니었다면 KT와 무난하게 재계약을 했을 테고, 그랬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운명이란 때론 이렇게 가혹하게 흘러간다.

 

  운명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확실한 정황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마르테는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음주운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운전자 자신의 안전은 둘째 문제이다. 음주운전자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근거로 마르테의 행위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갖춰야 할 예의가 있다. 마르테가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KBO리그의 팬들로부터 그의 죽음은 '합당한 벌'이 되었다. 많은 팬들이 그를 애도하는 가운데, 범법자를 향한 애도가 필요 없다며, 마르테의 죽음을 애도하는 팬들을 몰아세웠다.

 

  마르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다.

 

  죽음으로 망자의 잘못이 모두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잘잘못을 가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옳고그름을 분별하는 일에도 적정한 시기가 있다. 마르테가 이제 막 세상을 떠난 시점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조금 참아주는 것도 미덕이다.   

 

  옛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장례는 특별한 제의였다. 아무리 원수 척진 사이라 하더라도 망자를 보내는 삼일 동안은 절대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향불을 올리고 재배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망자의 행적과 망자에 대한 감정과는 무관한 행위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죽음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르테는 KT위즈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매듭짓고 싶어 했다. 비록 선수로서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KT구단에서 구장 내에 마르테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그의 바람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인사는 그 때, 하기로 한다.

 

  하고 싶은 말도 그 때로 미루기로 한다.

 

 

 

 

 2012년 8월 26일 한화전 5이닝 3피안타 1실점, 9월 6일 SK전 7이닝 1피안타 무실점, 9월 12일롯데전 7이닝 5피안타 무실점, 9월 18일 두산전 7이닝 2피안타 무실점. 그리고 9월 23일 넥센전 완봉승.

 

 이 기록은 서재응의 것이다.

 

 대다수 선발투수의 기본 목표인 시즌 10승을 한 번도 이뤄본 적이 업는 선수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걸 이유로 서재응이 타이거즈에서 한 게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재응은 팀 상황에 따라서 선발로 나서기도 하고, 중간, 마무리, 보직을 가리지 않고 팀을 위해 헌신했다. 투수의 잦은 보직 변경이 컨디션 저하나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사실 서재응은 2016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으나, 대승적 차원에서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그가 부진했던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좋은 경기를 통해 만회하고 은퇴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구단이 서재응의 은퇴를 간접적으로 종용하는 상황에서 그의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은퇴였다. 팀을 위해 헌신했던 그이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김기태 감독이기에, 그가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으면 그의 뜻대로 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재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엔트리에 포함됨으로써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어린 투수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간절함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린 선수들의 간절함은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석민과 임준혁과 같은 선발투수가 부상 때문에 2군에 내려가 있는 가운데, 최영필 선수가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최영필의 유니폼에 새겨진 번호는 서재응의 26번이었다. 서재응은 중계석에서 자신의 분신으로 세워진 선발투수를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채우지 못한 10승을 오늘 이루면 좋겠다고. 해설자 신분이라 공개적으로 타이거즈를 응원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최영필 선수가 한 구 한 구 던질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고, 긴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최영필 선수에 이어 박준표가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역시 26번이었다. 박준표는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타선에서도 서재응과 최희섭을 위해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김주찬의 홈런을 포함해서 4회까지 6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선발진이 제대로 가동한 경기가 아니었다. 불펜선수들로 한 경기를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화이글스는 7회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왔다. (계속) 

 

 

 

 양현종은 어느 시즌보다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헥터와 지크가 타이거즈에 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본래 팀을 지키고 있던 에이스로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승리였다.

 

 양현종은 올 시즌 7경기에 나섰지만 승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불운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구속이 떨어졌다고도 했다. 양현종을 보는 시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양현종의 부진을 타이거즈의 부진과 동일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양현종은 상징성이 강한 선수였다. 양현종의 패배는 곧 타이거즈의 패배였고, 그것은 '나'의 패배였다. 

 

 양현종의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했지만, 그러면서도 양현종에 대한 기대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양현종의 파워가 조금 떨어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머지않아 곧 예전의 파워를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믿음이었다. 더군다나 승리만 없을 뿐이지 경기당 실점은 평균 3점 정도였고, 양현종이 부진했다기보다, 타선에서 잡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패배한 경기가 대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5월 13일 경기 전까지 양현조 등판시 타이거즈 타선의 득점 지원은 경기당 1.86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현종은 미안해했다. 양현종의 승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동료들이 그에게 미안해하며, 양현종이 등판하는 경기에선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현종은 주장 이범호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그런 부담 갖지 말고 경기에 임해달라고 부탁했다. 오히려 미안한 건 양현종 자신이었다. 동료들이 어렵게 얻은 점수를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양현종은, 그가 에이스라는 이유로, 생각보다 많은 짐을 짊어지고 시즌을 치르는 선수였다.

 

 1회말, 김주찬이 중전안타로 출루하고, 이어 오준혁이 볼넷을 얻었다. 브렛필의 타구가 김태균에게 잡히는 듯했으나 김태균은 어이없는 실책을 범한다. (요즘 팬들에게 많은 질책을 받고 있었는데, 이 실책으로 김태균은 정말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털렸다'. 팬들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실책은 전쟁터인 그라운드에서 '병가지상사'가 아닌가. 하긴 실책을 범하거나 부진한 선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우리 팬들도 만만치 않다.) 덕분에 김주찬이 홈을 밟고, 이범호의 땅볼 타구에 오준혁도 홈을 밟게 된다. 상대편의 실책 때문에 얻게 된 점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점수였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었다.

 

 상대 투수였던 로저스도 이따금 안타를 맞긴 했지만 훌륭한 피칭을 했다. 지난 시즌 양현종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좋은 기억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현종도 로저스만큼 좋은 피칭을 했다. 

 

 7회초, 양현종은 안타를 하나 허용하긴 했지만 마지막 타자 하주석을 잘 잡아내면서 (사실, 강한울의 수비가 돋보였지만) 이닝을 마무리했다. 7회까지 무실점이었다. 안타는 딱 세 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올 시즌 감격적인 복귀를 하고 좋은 피칭을 선보이다가 손가락 혈행장애 때문에 재활군에 있었던 곽정철이 다시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랐으나 연속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다. 뒤를 이어 심동섭이 등판했지만 곽정철의 승계 주자 두 명은 결국 홈베이스를 밟았다. 양현조의 승리가 위태로워진 순간, 홍건희가 등판했다. 올 시즌 새로운 마무리 투수로 성장해준 홍건희, 모두의 믿음에 완벽한 세이브로 보답했다.   

 

 그리고 양현종은 8경기 등판만에 승리를 얻었다.

 

 양현종의 승리는 타이거즈의 승리이자, 곧 모든 타이거즈 팬들의 승리였다.

 

 MVP 인터뷰에서 양현종은 그동안 팀과 동료들에게 미안했다고 고백한다. 승리보다 더 뭉클해지는 말이었다.

 

       

 양현종은 오늘 몸이 가벼웠다. 투수들은 매 시즌마다 컨디션이 절정에 오르는 시기가 다르다. 첫 등판부터 제대로 영점을 잡은 상태에서 출격하는 투수들도 더러 있지만, 장기 레이스에서 심한 부침을 겪게 되는 일이 많다.

 

 

 140km 중반이 구속이 말해주듯 양현종은 아직 시즌 정점의 컨디션이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스피드를 안정적인 제구로 커버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SK 상대투수 켈리도 양현종과 같이 좋은 공을 던졌다. 극성 팬들은 타이거즈의 타격이 약하다 보니 어떤 투수도 특급투수로 만들어준다고 비아냥거리지만, 켈리는 6회까지 비교적 안정적이면서도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6회까지 잘 끌어가던 양현종은 7회에 고메즈와 김성현, 김강민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1실점) 그리고 이대수와 조동화 타석 때 2점을 더 내줘 3실점을 하고 김윤동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김윤동이 최정과 정의윤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양현종의 승리는 또다시 날아가고 말았다.

 

 

 양현종은 7회까지 책임을 지고 에이스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싶었을 것이다. 꼭 자신의 첫 승만을 위해서 마운드에서 버틴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양현종이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것은 결과적으로 팀 패배로 연결되었다. 만약 7회부터 투수를 교체했더라면 어땠을까. 김윤동이 아닌, 다른 투수를 냈으면 어땠을까. 경기 끝나고 항상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양현종이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공을 뿌릴 시점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양현종이라면, 7회까지 던지게 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김윤동이 추가 실점을 막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한 것은 아쉬웠지만 8회에 이범호의 홈런을 포함하여 2점을 더 달아났다. 심동섭과 김광수가 7, 8회를 잘 막아 승리를 눈앞에 둔 듯했다. 그런데 9회 거짓말처럼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9회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최영필이었다. 최영필 또한 작년부터 위태로운 타이거즈 마운드에서 중심을 잘 잡아준 선수였다. 믿음직한 선수였기에 허탈감은 더 컸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타선은 잘 터지다가도 안 될 때가 많은데, 마운드는 타선만큼의 기복이 없는 데서 나온 말이다. 분명 설득력 있는 말이지만, 투수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선수인데, 잘 안 될 때도 있지 않은 것인가.

 

 에이스로서의 중압감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양현종이 그런 중압감이나 책무의식 따위를 좀 벗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음 경기, 또는 그 다음 경기에서 승리는 거둘 테고, 그는 승리를 얻을 만한 피칭을 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좀 놀아보자. 실컷.

 2016년 4월 9일, 타이거즈의 승률은 정확히 5할이다. 중하위권 팀들은 팀 승률을 최소 5할에 맞춰두고 경기를 운용한다. 팀당 144경기로 바뀐 2015 시즌엔 SK가 69승 73패로 와일드카드 자격을 얻어 가을야구를 치렀다. 2014 시즌엔 LG가 62승 64패로, 역시 5할이 안 되는 승률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이나 NC 같은 강팀에게 5할 승률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지 모른다. (올해의 향방은 어떻게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으나 작년에 삼성은 +32였고, NC는 +27이었다.) 그러나 타이거즈에게 5할 수성은 올해도 역시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헥터는 4월 9일 KT전에서 승을 추가하며 2승째를 거두었다. (현재 평균자책점 1.29) 헥터는 강한 인상을 남기며 KBO에 데뷔했고 타이거즈에도 잘 적응한 모습이다. 작년 한화의 로저스만큼이나 팀 승리에 기여를 해줄 것이다.

 

 그런데 양현종과 윤석민의 출발이 순조롭지 않다. 특히 양현종의 경우 팀의 에이스로서 최선을 다한 피칭을 선보였으나 아직까지 첫 승을 신고하지 못했다. 4월 8일 KT전에서 7이닝 동안 104개의 공을 던지며 분투했지만 내야수들의 실책과 부진한 공격력 때문에 승리를 얻지 못했다.

 

 윤석민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4월 5일 LG전에서 6이닝 동안 96개의 공을 던졌다. 비록 안타 6개를 허용했지만 LG 타선을 잘 묶어 첫 승을 따냈다. 시범경기에서 보였던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떨쳐낸 듯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등판이었던 4월 10일 KT전에서는 LG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윤석민의 공은 위력적이지 않았고 KT 타자들의 눈과 방망이는 매서웠다. 2회에만 5점을 내주었다. 3회초, 타이거즈는 KT가 그랬던 것처럼 무사 만루의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김주찬이 내야 뜬공, 브렛필이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1점을 얻는 데 그치고 말았다. 반면 KT는 3회말에 김상현의 투런홈런으로 2점을 더 달아났다. 김주형이 솔로포를 쏘아올렸지만 7대2의 스코어는 상당히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5회에 3점을 추가하면서 7대5까지 따라붙었다.

 

 아무리 좋은 선발투수라고 해도 난타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윤석민도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고 운도 억세게 좋지 않은 그런 날이라고 생각했다. 5회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피노의 구위가 공격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타이거즈 타선을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기회는 또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했다. 

 

 6회초, 그렇게 기회는 다시 왔다. 무사 주자 1, 2루였고 김주찬 타석. 하지만 김주찬은 고영표의 공에 맥없이 배트를 휘두르며 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브렛필은 3회에 이어 또다시 병살타를 치고 말았다. 이 대목에선 그야말로 장탄식이 나왔다. 

 김상현이 또다시 투런홈런을 때려 스코어는 9대5까지 벌어졌다. 경기를 보는 내내 그로기 상태에 몰린 것 같았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오준혁과 김원섭이었다. 나란히 1, 2번으로 테이블세터 역할을 맡은 이들은 전 타석 출루하며 공격의 활로를 열어주었다. (오준혁 4안타 / 김원섭 3볼넷 1안타)

 

 김주형의 실책과 윤석민의 부진, 그리고 브렛필의 두 번의 병살타까지, 타이거즈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안타는 KT보다 더 많이 때렸지만 스코어는 밀렸고 경기 내용도 좋지 못했다.

 

 양현종과 윤석민은 아직 완전한 페이스를 찾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곧 에이스다운 피칭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지크도 승은 없지만 괜찮은 모습이다. 다음 등판이 기대된다. (4월 7일 선발 등판한 지크를 6회 때 바로 김윤동과 교체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차피 임준혁을 5선발로 운용할 계획이었다면 선발 자원인 김윤동을 경기 후반 제2선발로 등판시켰으면 경기를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때만 해도 로테이션이 아직 돌지 않았을 때라 무리수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임준혁은 4월 12일 첫 등판이다. 로테이션에 따라 등판 일정이 밀리긴 했지만 작년 시즌만큼 믿음직한 투구를 해줄 것이라 믿는다. 

 

 타이거즈의 5할은 이 선발투수들이 얼마나 안정적인 투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타격도 작년만큼 엉망이진 않으므로 기대해 볼 만하다. 한 경기 한 경기 중요하지 않은 경기가 없지만 지금까지는 루틴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4월 12일부터는 진짜 시작이다. SK와 넥센을 차례로 만나는데, 두 팀 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작년처럼 만만한 상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이번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