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아이는 감정 표현이 남다른 아이였다. 엄마 품에 안겨서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울곤 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를 때가 많았고, 아이보다 더 절망적인 표정으로 화를 낼 때도 있었다.(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그 순간에는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잠시 외출한 엄마를 찾으며 집이 떠나가라 울었던 적이 있다. 엄마, 금방 올 거야. 괜찮아, 라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말을 알아들을 시기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빠가 말한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해도, 아이는 그 말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당장 엄마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진, 아빠를 괴롭힐 거야, 하고 마음먹은 것처럼 질질 짜고 뭔가를 집어던지고 그랬다. 그러던 아이가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떼를 쓰는 일이 많고(특히 아빠에게, 아니 오직 아빠에게만. ㅜ), 소심하게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지만, 아이는 화나거나 울고 싶은 마음을 예전처럼 과하게 표출하지 않는다.

 

  어느 날은 유치원에서 감정에 대해 배웠던 모양이다.

  엄마는 화나. 도도는 슬퍼. 엄마는 기뻐. 도도도 기뻐.

  유치원에서 배워온 감정 표현의 말을 종일 반복했다고 한다. 아이의 말놀이는 오래 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그 말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그 순간만 그러고 말았던지, 아빠 앞에서는 한 번도 그런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씻기고 막 욕실을 나서려는 순간, 아이가 물비누를 짜서 제 팔뚝에 발랐던 모양이다. 엄마도 모르게,

 

  도도야!! 다 씻어놓고 그러면 어떡해!! 라고 소리쳤나 보다.

  그랬더니,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엄마 화나, 아니야. 엄마 기뻐야. (엄마, 화내지마, 엄마는 웃어야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아이를 놀래킨 게 미안하기도 해서,

  그래, 엄마 화나, 아니야, 기뻐야, 라고 말하면서 아이를 안아줬다고 한다. 아이의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고 한다. 쿵쿵.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 둘도 없이 자기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자신에게 화가 났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오늘도(2017.8.31)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아이를 씻기고 몸을 닦아주고 침대에 잠깐 앉혀놓고 잠깐 뭔가를 하는 사이, 아이는 제 손목에 선블록을 바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순간에도 아이가, 뚜껑을 열고 밑면의 롤을 돌려 고체 형태의 블록을 돌출시켜 그걸 발랐을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했단다.)

  당황한 엄마는 이번에도 도도야!! 라고 비명을 지르듯 아이를 부른 모양이다. (엄마는 자주 당황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떤다. 긴급재난문자보다 엄마의 외마디가 아빠를 더 놀라게 한다.)

  순간적으로 움찔한 아이는 자신이 하고 있던 놀이를 멈추고, 엄마를 보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엄마, 기뻐야. 라고, 말했단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기쁜 말인가. 비록 자신의 의도를 어법에 맞지 않게 표현한 것이지만, 아이의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엄마는 기쁨이라는 뜻이 된다. 아이에게 엄마는 기쁨이지, 슬픔이나 화남은 아닌 것이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 자신은 기쁨이다. 엄마가 화난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면 마음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 이 정도의 일로 ‘슬픔’이면 어떡해. 우린 서로에게 ‘기쁨’이잖아.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이보다 우리가 더 감정 표현이 서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기쁨이라는 감정을 시시때때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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