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아침이 됐어!
생활2023. 5. 13. 07:16
벌써 아침이 됐어!!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며 아이가 외친 말이다.
아침은 해가 뜨면 자연히 오는 시간이지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지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전한 끝에 우리에게 돌아온 시간이지만 그런 시간의 과정을 일곱 살의 아이가 알 리도 없고 아이에게 중요하지도 않다. 어쨌든 아침이 돼버린 것. 그것도 ‘벌써’
‘벌써’는 어떤 일이 예상보다 일찍 이루어졌을 때 쓸 수 있는 부사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번씩, 아니 무수히 많이 ‘벌써’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아이가 이제 막 입원을 했을 때, 순하고 말랑말랑한 속살에 파묻힌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는 것부터가 막막한 일일 때, 그 때서부터 이 아이가 말끔하게 나아 집으로 돌아가고 놀이터에서 다시 뛰노는 시간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 집 아이는 벌써 나아서 퇴원한 거야? 그런 말을 듣는 게 최고의 덕담인 그 순간을 말이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그런 시간이 오지 않았음을 알리려는 듯 병실이 떠나가라 울었다. ‘이제’ 겨우 주삿바늘을 아이 손등에 꽂는 첫 번째 관문을 지난 것이다.
거의 혼절하다시피 잠든 아이를 보며 이 아이가 언제 다 클까, 생각하니 그 시간이 더 막막해졌다. 아이가 하루하루 조금씩 자랄 걸 알면서도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수액 방울 소리의 간격만큼이나 멀고 아득한 느낌이었다.
투명한 약물이 작은 몸속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가 나쁜 세균과 싸우고 있었고 그것은 아이가 치르는 첫 번째 내전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내전의 상처를 이겨낸 아이는 더 단단한 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다 더 빈번히 일어나는 외전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그 때가 되면 나는 아이의 몸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해주겠노라고. 벌써 이렇게나 컸어?!
아이는 어느 순간에 ‘벌써’ 퇴원했고 다시 어린이집에 갔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탔다. 그 단순한 놀이를 지치지도 않고 여러 번. 벌써 이렇게 컸어? 나 대신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이웃들이 있었다.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벌써’라는 시점의 시간을 마구 자랑하고 싶었다. 아직도 오지 않은 시간들이 창창한데도 말이다.
아이에게도 그 시간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자신이 잠든 긴긴 한밤을 스스로 지켜보지 않은 아이에게, 그래서 ‘벌써’ 아침이 된 거라고, 와락, 안기만 해도 왈칵, 하고 쏟아지는 것들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내가, 더 많은 ‘벌써’의 시간을 이렇게 진작부터 갖고 싶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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