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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고흐가 죽기 이틀 전에 그린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후에도 고흐는 예닐곱 작품을 더 그렸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이 작품을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작품이 고흐가 바라본 자신의 마지막 생처럼 느껴진다.

 

 (작품에 대한 사실 정보가 바뀌어도 작품에 대한 이미지는 잘 바뀌지 않는다.)

   밀밭의 황금빛은 유독 휘황해 보인다. 밀밭 자체가 주는 풍요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밀밭의 들머리에 닿아 있는 하늘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인다. 하늘은 보랏빛인데 캔버스 상단의 경계는 까맣다. 하늘은 차라리 죽음에 가깝다. 그러니까 풍요로운 밀밭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생명 같다. 결코 풍요로운 일생을 보내지 않았던 고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대리적 생명으로서 대자연을 작동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욕망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까마귀, 날아간다. ‘날아오는’ 게 아니다. 까마귀의 날개의 방향을 보면 분명 그 날갯짓은 저물어가는 하늘, 즉 죽음의 방향 쪽이다. 까마귀는 풍요로운 밀밭을 보지 못한다. 까마귀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저 하늘뿐이다. 고흐는 밀밭 사이로 난 세 갈래 길 중에서 과연 어떤 길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죽음과 맞닿은 길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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