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설원에서는 눈이 내리는 소리가 모든 언어를 잠식한다. 내리는 눈이 곧 언어다. 그래서 설원의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동안에는 되도록 말을 아낀다. 눈은 응결된 빛의 언어다. 눈이 녹지 않는 한 그 빛의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설원에서는 그 언어를 굳이 해독할 필요가 없었다. 설원의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는 것으로, 내리는 눈을 맞는 것으로, 눈밭을 걷는 것으로 그 언어를 이해했다.

 

  눈은 내렸다가 그치고, 언제 멎었는지도 모르게 다시 내리기를 반복한다. 이곳에서도 시간은 흐르지만 시간을 헤아리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눈이 내리는 속도가 시간이 흐르는 속도다. 눈이 매서운 바람과 함께 퍼부어질 때는 시간의 유속을 가늠할 수가 없다. 눈이 바람 없이 잔잔하게 흩날릴 때는 시간의 흐름마저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설원에는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다. 그 나무를 구체적으로 이르는 이름은 없었다. 어떤 이는 그 나무를 얼어붙은 자의 뒷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이는 새로운 생명의 그늘이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이는 푸른 피의 정령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설원의 나무를 사람이나 생명과 관련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나무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나무에서 눈의 결정들이 열린다고 믿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눈이 눈밭에 섞이도록 종종 나뭇가지를 건드리곤 했다. 눈밭의 결정들이 다시 떠올라 허공에서 무수한 눈발로 열린 뒤에 다시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나무를 베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조차 쉽게 꺾지 않았다.

 

 

- 『겨울 속으로』(마카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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