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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윤석민

야구2015. 3. 16. 01:41

 

  윤석민이 돌아왔다. 금의환향은 아니다. 그는 분명 실패했다. 스포츠 일간지들은 윤석민의 한국 복귀 소식을 앞다퉈 쏟아냈다. 윤석민과 볼티모어, 그리고 기아타이거즈 간의 손익 계산까지 따져보는 기사문도 있었다. 윤석민의 가세가 타이거즈 팀 전체에 미칠(이미 미치고 있는) 영향을 분석한 기사문까지 모두 훑어보았다. 설렜다. 기사를 읽는 게 재미있었다. 정규리그가 개막하기도 전인 3, 오키니와에서 연일 열리고 있는 연습경기에서 타이거즈가 전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뉴스보다 더 참담하게 들려오던 그 때, 윤석민의 복귀는 그 사실만으로 날 들뜨게 했다.

 

  진짜다.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다.

 

 ‘돌아와 버렸다는 하나의 완료된 사건이고, 그래서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체념이나 절망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아니다.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으므로 타이거즈는 더이상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팀이 돼버렸다. 물론 윤석민이 있었던 2013년도 정규리그 8위에 그쳤다. 하지만 2013년의 윤석민은 완전한 몸으로, 그리고 안정된 보직으로 공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았고, 그가 있었으므로 2013년 시즌을 꾸역꾸역 꾸려갈 수 있었지만, 그가 없었다 한들 2013년의 레이스가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진짜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다.

 

  2014년 볼티모어에 적을 두고 있던 윤석민이 타이거즈를 떠나 있던 그 해의 성적에 대한 빚을 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난 그가 타이거즈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그를 그리워했다. 야구는 전년도의 성적으로 다음 시즌의 성적을 예상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객관적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관람하는 팀의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나의 팀에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타이거즈가 비록 2013년에 성적이 바닥을 쳤다 해도 2014년에도 비슷한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하는 은 아무도 없다. (뼛속까지 타이거즈 팬이라면서 타이거즈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진짜 팬은 아니다.) 전년도 성적이 좋지 않았어도 다음 시즌에는 전년도보다는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하는 게 진짜 팬의 마음이다. 그래서 2014년의 타이거즈를 응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4년 시즌을 지켜보면서 윤석민의 가세를 가정하고, 양현종만으로 견고하게 구축되지 않는 타이거즈의 선발진을 상상으로 꾸려보기도 했던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라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모두는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윤석민이 굳이 져야 할 빚이 있다면 2014 시즌, 팬들이 가장 강력하게 원하고 기다렸던 자신의 귀환을 1이나 늦춰 이뤄준 것에 대한 빚이다. 그 빚의 탕감은 당연히 2015 시즌의 성공이다.

 

  진짜 윤석민이 돌아와 버렸다. 정확히 527일만이다.

 

  그는 315LG와의 시범경기 2차전에서 안익훈, 최승준, 김용의를 상대했다. 18구를 던졌고, 그 중 직구 최고 구속은 146km였다. 노포크에서 던질 때 최고 구속이 130km 중후반이었던 걸 고려하면, 그의 몸은 작년보다 훨씬 더 좋아진 상태라는 뜻이다.

 

  그와 함께,

 

  진짜 타이거즈가 돌아올 것이다.

 

 무한궤도 1[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타이틀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였다. 그 노랫말 중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라는 구절이 있다. 1989년에 나온 앨범이지만 난 그 때만 해도 무한궤도에 관심이 없었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아, 앨범 타이틀보다 먼저 더 유명해진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겨우 알고 있을 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 방이라는 게 생겼고(동생과 같이 쓰긴 했지만) 나는 마이마이카세트를 엄청난 노력 끝에 얻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미니카세트를 끼고 누워 라디오를 듣는 게 일이었다. 그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정오의 희망곡이었다. 정오가 되면 가방 속에 숨겨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다 선생에게 걸리면 빼앗겼다.)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4교시가 끝나면(1240분쯤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얼른 B면으로 돌려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불편해서 리버스 녹음이 된다고 하는 정말로 말로만 들었다. - SONY가 무척이나 갖고 싶었다.) 녹음된 프로그램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들었다. 51번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30분 가까이 버스를 타야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시간을 견디는 건 고역이었다. 하지만 정오가 한참 지나 듣는 정오의 희망곡이 있어서 괜찮았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난다. DJ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성우였던 걸로 기억한다. - 그 날 DJ는 비오는 날 와이퍼 소리가 좋다고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앞유리에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마침 버스도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와이퍼가 흔들리는 걸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옆 차창에 빗물이 맺히는 걸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싱숭생숭했다고 할까? - DJ싱숭생숭이란 표현을 했던 것 같다. - 당시의 내가 그 이상한 기분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답답해 했다는 것도 기억난다. 신해철의 목소리는 비가 내리는 날, 땅바닥에 낮게 깔리는 안개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안개가 흩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걸어간 아침의 길 끝에 (정류장 부근을 나는 길 끝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먼저 와서 딛고 서 있는 바람 같은 느낌이었다. 발목이 시리도록 안개가 서성이고, 바람이 허공을 흔들어 고여 있던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았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춰섰지만 난 느끼지 못했다. 다만 빗방울들이 흘러내리면서 나에게 써 보인 말들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시선을 옮겨 옆의 차창을 바라보면 모르는 이름이 쓰여 있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이름과 얼굴이 질문일 수도 있고 그것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히)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 동안,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살았다고) 최소한 30분보다는 더 긴 시간이 말이다. 그런데 아깝지 않았다. 끝나가고 있다는 건 상실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끝도 안 보이는 생이 낯선 질문 앞에서 어물쩍 흘러가주는 것이 고마웠다. 신해철의 노래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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