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그 날 바다](김지영, 2018)는 그 날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를 바라보는 최초의 시점을 두라에이스에 위치시킨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도 두라에이스는 그 날 선상에 있었지만 실제 위치는 달랐다. 두라에이스가 레이더망을 통해 좌현 쪽으로 급회전하는 세월호를 감지했던 그 위치, 정부가 발표한 위치와 실제로 두라에이스가 있던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세월호의 진실은 거기에 숨겨져 있었다.

 

 

(NA) 오전 6시 40분경, 두라에이스는 진도관제센터 관할 구역에 들어선다. 8시 10분에서 20분 사이 좌회전 코스인 맹골 수도 입구에 도착했다. 이때 한 선박이 오른쪽에서 추월해 갔다. 그것은 여객선이었다. 맹골 수도 내에 두 섬 사이를 빠져나왔을 때, 문선장(두라에이스 선장)은 특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오른쪽 전방, 한 선박이 섬에 바짝 붙어 급회전을 하고 있다. 그 선박이 두라에이스 쪽으로 달려올 수도 있었다. 선박과의 교신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해당 선박의 AIS는 꺼져 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선박을 (문선장은) 계속 주시했다.

 

  진도관제탑으로부터 세월호 침몰 소식과 함께 구조 요청이 전해진다. 그러나 관제탑이 보내온 좌표엔 세월호의 AIS가 잡히지 않았다.

 

  (NA) 문선장은 직관적으로 조금 전 급회전했던 선박 쪽으로 항로를 잡게 된다.

 

  문 선장은 진도관제탑과 교신하면서 배에 탄 승객들이 배에서 탈출을 해야 인명 구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세월호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

 

  문선장은 다급한 요청에도(라이프링이라도 사용해서 승객들을 얼른 배 밖으로 탈출을 시켜라,) 여객선 선원들은 해경들이 언제쯤 오느냐는 것만 확인할 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경이 왔지만 해경들은 조타실로 향했다. 선내에서는 여전히 탈출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다. 승객이 아닌, 선원들을 먼저 구했다. 그 사이에도 어린 학생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승객들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활동을 도우려는 민간선박들에게 관제센터는 엉뚱한 위치를 보내주었다. 이쯤 되면 이런 전제가 가능해진다.

 

  정부는 처음부터 구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뜯어보면 더 무서운 전제가 추론된다. 처음부터 구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구조를 해야 하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가능해진다. 구조를 해야 하는 어떤 상황.

 

  고의침몰이다.

 

 

  고의침몰은 세월호 침몰 이후 꾸준히 제기됐던 가설이다. 정황이 그랬고 유력한 심증들이 계속 불거져 나왔다. [그 날 바다]는 수백, 수천 번 복기되었던 세월호의 항로를, 정부 발표 자료, 생존자 증언, 선원들의 증언, 전문가(물리학자) 자문, 선내 적재된 차량 내의 블랙박스 등을 재검토하며 되짚어간다. 만약 두라에이스가 없었다면 세월호 진상 규명은 정말로 요원한 일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김지영 감독.

  김지영 감독은 세월호 침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고 밝힌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월호 항로 재구성에만 6개월을 매달리는 집념을 발휘한 끝에 세월호 침몰 4년 만에 [그 날 바다]를 세상에 공개했다. 세월호를 다룬 첫 번째 추적다큐였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홍보영상을 만들어달라는 유가족의 부탁이었다. 김지영 감독은 어린 유가족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지영 감독은 다큐팀과의 회의를 통해 정부가 발표한 자료부터 분석하기 시작한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는 허점이 많았다. 이상한 자료였다. 사고 당일 새벽까지 세월호의 항적 기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3시 40분경, 갑자기 대전의 데이터 저장이 중단되었다. 그런데 또 갑자기 다음날 8시 50분경의 세월호 항적기록이 발표된다. 목포관제센터에 저장된 것이라고 했다. 직진하던 세월호가 급격한 우회전으로 인해 좌초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우회전 구간 항적의 데이터는 또 없었다. 세월호의 AIS가 꺼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4월 21일, 세월호 AIS가 꺼져 있었던 그 구간의 항적기록이 다시 공개된다. 그것도 목포관제센터에 저장돼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거차도의 관제자료에 남아 있던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 기록은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해군 레이더 항적도가 공개된다. 이 항적도에 따르면 8시 30분경부터 세월호가 급격한 좌회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간 자료가 없는 데이터였다. 일부를 공개하고 일부를 감추었다. 단순사고라는 결론을 위해 데이터는 은폐되고 누락되었다.

 

  다큐팀의 추적은 한계상황에 부딪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지영 감독은 열악한 환경에서 왜 [그 날 바다]를 만들어야 했는가. 웬만한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김지영 감독은 [그 날 바다]를 통해 항간에 회자되는 음모론을 제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다큐라는 장르의 목적성은 어떤 사실의 기록을 통해 진실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날 바다]가 다루는 세월호 침몰은 사실의 기록 자체의 복원이 어려웠다. 사실 기록이 고의로 숨겨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배제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과 유가족들을 달래는 내용으로 다큐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지영 감독은 애초에 그런 다큐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의 진짜 진실을 밝히는 것이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김지영 감독의 신념이 [그 날 바다]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그 날 바다]는 마침내 어떤 한 가지 진실에 당도한다. 그 진실에 대한 언급은 그 영화를 보게 될 사람들을 위해 아껴두기로 한다.

 

  엔딩씬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쯤의 상황이다. 프레임 속의 아이들은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차례대로 패닝되면서 화면에 뜨는 이름 앞에 쓰인 ‘고(故)’라는 말이 낯설다.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속에는 그렇게 생생히 살아 있을 아이들,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몸이 자꾸 왼쪽으로 기울었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좌현으로 기울어진 채다. 그 기울기를 감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 날 바다]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3653

 

  김지영 감독이 세월호 다큐 내레이션 작업 의뢰를 했을 때 정우성 님은 고민도 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멋진 분이다. 두 사람 다.